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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칼럼] 노쇠통(老衰痛)의 미학(美學)

2018-05-31 (목) 우남수 목사 / 행복연구원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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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조너선 실버타운 지음.노승영 옮김,서해문집)이라는 책은 지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사람을 포함한 동식물들은 늙음을 통해 죽음에 이르며 사멸되는 것을 문학.과학.신화.역사를 관통하며 명약관화하게 설명해 놓았다. 특히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지만,식물이 동물보다 훨씬 수명이 길며,캘리포니아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있는 셔먼 장군이라는 이름의 자이언트 세퀴이아는“무게가 점보 제트기 여섯대만큼 나가는 2000년 묵은 노거수(老巨樹)가 서있다. 이 나무가 한때 쌀알 무게의 씨앗에서 발아했다니 기적같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거목의 성장속도는 1년에 0.8mm 이고,계속 노쇠해져 고령에 이르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쓰는 사자성어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우주의 법칙을 한 인간의 변화과정을 시효적절하게 잘 구분해 놓았다.요즈음 같은 각종사고로 죽음을 당하는 사람의 경우나,폭풍우나 산불로 인해 나무의 사망률이 높아져 400년 마다 숲 전체가 없어지는 나무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로병사의 자연법칙은 모든 것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그런데 더 엄밀히 검토해보면 늙는 것과 병들어 아파가는 것은 결국 같은 말이다.

특히 최근에 노인 건강법에 대해 쏟아져 나온 책들 가운데,일본 저술가 소에지마다카히코의<행복하게 늙고 싶다 아프지 않게>(더난출판사)는 “늙음=아픈것”이라는 공식을,대 여섯가지 전형적인 남성 노인병,즉 통풍,전립선 비대증,고혈압,만성기관지염,요통,목통증들을 한꺼번에 겪게 되면서 “아프니까 노인이다…지혜롭게 아플각오를” 이라고 외치며 조언한다.


나에게 12년 연배 스승의 목사님이 계신다. 내가 건강이 어떠시냐고 물으면 “항상 아픔과 친구하며 사는 거야”로 답하셨다. 나는 그 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는데, 70이 넘어가면서 점차 그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노쇠해 지는 것은 통증을 동반하게 되는 것이기에,나는 신조어 노쇠통(老衰痛;aging pain) 이란 말을 만들었다. 물론 부모로부터 유전적으로 건강한 체질을 물려 받아 평생 감기나 잔병없이 100세 넘게 장수하며, 고통을 모르고 활동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수 있다.그러나 나 같은 경우는 날때부터 3남매의 마지막 늦둥이로 어머님이 40넘어 낳은 아들에, 모유가 없어 미음으로 큰데다,가난으로 인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랐으니 비실비실 할 수밖에 없다. 부모님이 모두 60대에 소천하신걸 보면 건강체질은 아니었던것 같으며,유전적으로 약체질 일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천성적으로 약한 몸이지만,그런대로 지금까지 몸에 칼을 데는 수술없이,살아가고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전형적인 노인병약들 당뇨,혈압,콜레스트롤 등을 복용하면서 60대 중반까지 건강을 유지해 오던중,나의 통증은 엉뚱하게 관절염 초기 증상이 나타나며 시작되었다.옛날에 부주위로 다쳤던 왼쪽 무릎과 7살 때 철봉에서 떨어져 오른쪽 팔이 골절 되었던 데를 잘못 맞추어 굽은 것이 늦게 팔꿈치에서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것으로부터 여기 저기 아픈곳이 늘어나게 되었다.나는 여러 건강식품,진통제,침,스파,물리치료를 동원해 아픔을 줄여나가지만,결국 완치는 없고,마지막에 수술을 하던지 통증을 완화시키며 아픔과 함께 사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았다. ,스승님의 말씀처럼 아픔을 감사하며 친구삼아,친하게 지내며 살기로 했다. 노쇠통이라는 불청객 친구가 찾아와 나머지 인생을 같이 지내려면,서로를 잘 알아야 된다.

늙은 것은 그날 분량의 늙은것만큼 매일 매일 연속적으로 늙어간다고 한다.동반되는 통증도 점점 악화 될수 있다.그러나 노화가 사고나 중병으로 인해 한번 폭삭 늙는 경우는 할수 있으면 그것을 피해가야 한다. 또 반대로 몸만의 자체 회복 능력으로 건강이 더 좋아지고,통증도 완화 될 수 있는 때가 있는데,항상 내일은 더 좋아지겠지 하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누가 말한 늙은이의 ‘처절한 자기 보존 본능’의 능력을 발휘해 투병의 승리개가를 불러야 될것이다.

끝으로 기독교 신앙인의 경우,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의 고통이 의미가 있었던것처럼,기독교인의 아픔에는 숨은 목적이 있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될것이다.신약의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에 헌신적으로 생을 바쳤으나,그것을 방해하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그것은 심한 편두통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되며,그는 그것의 제거를 위해서 세번 주께 간구했으나,주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대신 문제 속에서 새로운 은혜를 베푸셨다.

<우남수 목사 / 행복연구원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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