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놀라운 힘

2018-05-30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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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에 미모의 공주 헬레네가 있었다. 이 헬레네가 시집가기 전에 그녀를 데려가기 위해 구혼을 신청하려고 그리스의 연합 국가 왕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서로 티격 태격 다투면서 아우성이었다. 그러자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하나의 제안을 했다. 만약 헬레네가 위험에 빠지면 모두가 외면 말고 그녀를 구하자는 것이었다. 구혼에 참여한 왕자들이 모두 이를 수락해 헬레네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던 다투지 않고, 그녀 신변에 언제고 위험이 생길 경우 모두 힘을 합쳐 그녀를 구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미케네의 아가멤논이 스파르타를 공격, 점령해서 동생 메넬라우스를 스파르타의 왕으로 만들고 헬레네와 결혼을 시켰다. 그후 스파르타를 방문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헬레네를 보고 홀딱 반해 메넬라우스가 잠시 출타한 사이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갔다. 메넬라우스 왕이 헬레나를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것이 불씨가 되어 일어난 전쟁이 바로 기원전 1200년에 일어난 그 역사적인 트로이 전쟁이다.

여자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하길 래 여자 한명 때문에 두 나라가 피터지게 싸웠다. 이 전쟁은 거의 10년 가까이 계속되면서 수많은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를 남겼다. 이제까지 역사적으로 남성 한명 때문에 나라와 나라가 대적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여자의 존재가 이처럼 대단하니 크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여자들의 능력과 잠재력이 갈수록 두각을 나타내면서 그동안은 감히 엄두도 못 냈던 남성전유물인 고위직이 여성들에 의해 속속 채워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이미 전부터 있어온 현상이다. 영국의 테레사 메이 수상이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등 강대국의 수장 자리는 물론, 미국의 메들린 울브라이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 정계 요직도 여성들이 맡기 시작한 지가 벌써 오래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등 역사적으로 여성이 국가의 리더로서 나라의 발전을 가져온 인물들도 여럿 있다. 오늘날 하다못해 폐쇄적인 국가 북한에도 여성인 최선희 국장이 이번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을 상대로 한 외교에 최전방에 나서 독설을 퍼붓고 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감히 엄두도 못 냈던 FBI 수장이라든가, 검찰청의 최고위직 자리 등도 이제는 바야흐로 여성들이 보란 듯이 하나 둘씩 꿰차고 있다.

미 상원에서 얼마 전 미 중앙정보국(CIA) 사상 처음으로 여성 해스펠을 수장으로 뽑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버락 오바마 시절에도 미 연방수사국(FBI) 역사상 105년만에 여성인 리사 모나코 백악관 대 테러담당 보좌관이 수장직에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예가 있다.

이번에도 뉴욕주 검찰총장 자리에 4명의 여성학대 혐의로 자진 사퇴한 슈나이더 맨을 대행, 여성 바바라 언더우드 전 연방검사가 주 역사 이래 처음으로 선출돼 여성에 대한 격찬이 쏟아졌다. 물론 잔여임기만 채우고 새 총장은 또 11월 선거에서 다시 선출되지만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경이로운 일이라며 모두가 큰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여성들의 행진은 앞으로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를 일이다. 남성보다 훨씬 약하고 부드럽고 가냘픈 체구의 여성이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알고 보면 극히 놀라울 일도 아닌 듯싶다. 물보다 더 부드러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은 바위를 뚫는 힘이 있다. 폭풍 앞에 나무가 부러져도 부드러운 풀잎은 폭풍우가 지나가면 다시 일어선다. 또 강한 치아는 먼저 부러지지만 부드러운 혀는 오래 오래 말할 수 있다. 이는 모두 여성이 가지고 있는 특성, 즉 약하고 부드러움이 얼마나 강하고 질긴 가를 보여주고 있는 말이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 아직 여성대통령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여성이 탁월하다고 하여도 아직은 남성을 능가할 정도는 못되나 보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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