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갱이도 반복해서 예배 드리니 믿음이 생겨
▶ 한국교회, 북에 외국인용 교회 계속 요구해야
평양 봉수교회에서 지난 2015년 열린 남북 합동예배서 성가대가 합창하고 있다. <연합>
평양은 과거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다. 한국 교회의 특징이 된 새벽 예배도 이곳에서 탄생했고 회개의 성령운동 역시 평양에서 불이 붙었다. 또 평양신학교는 한국 최초의 신학교였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 루스 그레이엄 사모도 평양신학교 출신이다.
하지만 지금 북한의 기독교가 어떤지는 모두가 안다. “가짜 교회를 만들었더니 진짜 신자가 생겼다.” 영국 런던 주재 북한대사관 근무 도중 탈북한 태영호 전 공사가 북한 교회의 숨겨진 비화를 공개했다. 태 전 공사가 쓴 ‘3층 서기관의 암호’는 출간 열흘 만에 5만부가 팔려나가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여기에는 북한 종교에 관한 놀라운 증언도 등장한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980년대 평양에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을 세웠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됐다고 선전하려는 목적이었다. 물론 신자들은 북한 당국이 엄선해 배치한 ‘진짜 빨갱이’들이었다. 이들은 기독교인처럼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으며 예배와 미사를 드렸다. 겉으로만 신앙 생활을 보여주는 ‘배우’의 역할이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진짜 빨갱이’ 가짜 교인들이 반복해서 예배와 미사를 드리다 진짜 믿음에 젖어든 것이다. 이들은 설교 듣고, 찬송 부르면서 ‘진짜 신자’가 되어갔다.
예배당 밖에서도 전에 없던 일들이 벌어졌다. 음대생이 교회 밖으로 흘러 나오는 찬송가를 들으며 악보로 옮겨갔다. 그리고 주일 예배 시간이면 교회를 하릴 없이 배회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예배는 드릴 수 없지만 하나님을 향한 그리운 심정을 가슴에 담은 채 예배당 건물을 도는 것이다.
태영호 전 공사의 책에는 지난 199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북을 추진한 일화도 소개된다. 북한은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몰락한 후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교황 초청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황청은 ‘진짜 신자를 데려오라’고 요구했다. 북한은 부랴부랴 가톨릭 신자 찾기에 착수했고 전국을 대대적으로 조사한 끝에 6·25전쟁 이전 신자였던 할머니를 찾았다. 처음 할머니는 자신이 신자라는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종용과 설득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뒷담에 만든 예배단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다. “한번 마음속에 들어오신 하느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 할머니 이야기를 보고받은 김정일은 교황 초청 계획을 접고 교회와 성당 건립 계획도 백지화했다는 것이다.
한편 태 전 공사는 지난 16일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북한의 생생한 종교 현황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북한 기독교인이 겉보기엔 가짜 신자로 보이지만 내면은 진짜 신자”라면서 “한때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인사들이 남한 목사들에게 ‘교회를 많이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한데 진짜 신자가 생기는 것을 알고 나서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이 가장 두려워 하는 종교에 대해서 “기독교(개신교)”라고 대답했다. “김일성이 기독교 집안 출신이라 기독교 속성을 너무도 잘 안다”는 것이다. 북한은 “기독교를 그대로 두면 권력 세습을 이어갈 수 없다는 걸 알았던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또 남북 교류가 활성화될 때에 대비해 한국 종교계는 “공단에 ‘남한 사람, 외국 사람을 위한 교회’를 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관광객이나 공단 근무자들이 예배를 드려야 하고 그래야 국제적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작은 건물이라도 십자가가 세워진 모습을 보면 교인들 마음에 다시 하나님이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 기독교는 통일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면서 “탈북자들을 보살피고 한국으로 올 수 있게 돕는 것도 대부분 목사다. 한국식 ‘쉰들러 운동’을 벌여야 한다. 저도 기꺼이 함께하겠다”고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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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원 종교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