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대인의 랍비정신

2018-05-23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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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69년 로마군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순간이었다. 성 전체가 짓밟히면서 모든 것이 말살되기 직전, 유대인의 랍비 요한난 벤 자카이는 미래의 유대인을 위해 자신이 한 알의 씨앗이 될 것을 결심했다.

그 때 유대사회 과격파들은 성 밖에 아무도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벤 자카이는 하인들로 하여금 자신이 중병에 걸렸고 다음날 아침 죽었다는 소문을 퍼트리게 하였다. 그리고는 과격파들의 허락을 받고 관 속에 들어가 상여가 성 밖으로 나가도록 만들었다.

상여가 밖으로 나오자 벤 자카이는 관에서 나와 사령관을 만나 “황제여” 하고 무릎을 꿇었다. 사령관은 벤 자카이가 유대사회의 유명한 랍비임을 금세 알아차리고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때 한 전령이 와서 로마의 황제가 갑자기 사망해 원로원에서 장군(베스파시안)을 황제로 추대했음을 알렸다. 벤 자카이가 처음 황제여 하고 예언한 것이 그대로 적중한 것이다.


탄복한 베스파시안은 벤 자카이에게 청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 파괴중단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야브네’ 라는 소도시만 파괴하지 말아줄 것을 간청했다. 이곳에는 유대인들에게 성서를 가르치는 대학이 있었다. 베스파시안은 이 청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선뜻 받아주었다.

그 결과 야브네는 그대로 남아 로마를 이겨낼 수 있었다. 예루살렘이 파괴돼도 그 대학에서는 계속 벤 자카이가 교수들과 함께 상복을 입고 유대성서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후 야브네는 유대 전통을 가르치는 대학이자 유대인 최고의 재판소로 재건됐다. 유대사회는 이 학교를 통해 유대인의 전통이 굳건히 보존돼 오늘날 그 씨앗이 사방곳곳으로 퍼져나가 전세계를 지배하는 막강한 힘이 되었다.

하지만 세계최고의 나라인 미국의 학교는 툭하면 총기참사의 현장이 되어 피와 상처로 얼룩지고 있다. 교내 총기사건의 현장은 그동안 버지니아 공대(사상자 60여명), 오이코스 신학대학(11명), 켄터키주 마샬카운티 고교((10여명), 플로리다주 파클랜드 마조리 스톤맨 더들라스 고교(20여명), 매릴랜드주 그레이트 밀스 고교(3명 부상), 콜로라도 주 컬럼바인 고교(37명), 커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약 30명)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이번에 또 텍사스 산타페 고교에서 17세 학생이 총기를 난사해 학생과 교사 10명이 사망하고 다치는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이런 참사가 날 때마다 아무 죄 없는 학생들이 슬픔과 충격으로 울부짖고 교사들은 이런 학생들을 부둥켜안고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참담하다. 잊을 만하면 학교가 총기참사의 현장이 되는 광경을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것인가. 서둘러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미국의 장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유대전통은 아버지보다 선생을 더 존경하고 각 가정이 학교이다. 그만큼 유대인은 교육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족이다. 그 결과 유대인은 세계 도처에서 장악하지 않은 분야가 없다.

독일의 히틀러가 유대인 600만명을 처형시킨 것도 이런 힘의 원동력인 유대인 전통의 랍비정신을 지우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유대인은 밤새 돋아나는 잡초처럼 밟히고 또 밟혀도 계속 번성해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는 바로 ‘유대인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유대전통의 랍비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유대인 탈무드의 으뜸철학에서는 ‘교육은 칼 보다 강하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유대인의 이런 철학을 한번쯤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정치권은 진정으로 미국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침략국에 의해 성이 완전 파괴되고 있는 속에서도 온몸을 던져 교육의 전당인 학교만은 지켜내고야 만 유대인의 저 위대한 랍비정신을 반드시 기억하고 본받아야 할 일이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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