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추행, 성폭력 문화 불감증

2018-05-08 (화) 김성실/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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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사방에서 쉴새 없이 터져 나오는 “Me Too!” 신음소리를 들을때마다 매번 온 몸이 섬뜩해 진다. 오랫동안 수 많은 이들이 통절히 투쟁해 온 남녀평등의 노력에 수시로 찬물이 끼얹져진 듯하다.

사건의 상황과 피해자, 가해자들의 환경과 관계는 다양하지만, 권력과 위력에 눌리기 쉬운 인간의 약점과 여성성을 비하하여 공격하고 쾌감을 느끼는 비겁한 패배자들은 잔인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의 큰 기업체들 회식자리에 여성사원들이 남성상사 옆에서 음식시중까지도 들도록 직접 간접적으로 종용한 여성상사들도 있다하여 더욱 아연실색케 한다.


위안부 문제만 보더라도, 한국인보다는 오히려 2차세계대전 종전 무려 45년 후인 1990년, 한 용감한 네덜란드 여성이 본인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밝힌 것을 동기로 김학순 할머니가 용기를 얻어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였다.

그 후 2004년 일본 대법원이 한국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잡혀갔던 사실을 인정하여 이 천인공노할 ‘성노예’ 사건이 한국과 유엔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은 뒤늦게 일본정부로 부터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타협된 보상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일본인의 비인간적인 행동을 통렬히 질타하고 있으면서도, 동족이 동족에게 저지른 성추행과 성폭력은 여전히 ‘우리 문화가 원래…’ ‘남성들의 몸이 원래…’ ‘여성들이 좋으면서도 괜히…’라는 근거없고 터무니 없는 정당성으로 범죄를 은폐 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범죄가 알려지면 가해자보다는 오히려 피해자들이 비난과 책임의 대상이 되어 두 번의 가해를 받게되는 역사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어 놀랍다.

한국인의 민족성을 표현하는 ‘발끈’이라는 단어는 뉴스앵커들과 신문기자들이 자주 애용하고 있다.

온 국민이 화끈하게 단 시간내에 한 마음으로 어려운 일들을 해결하는 장점도 있으나,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위험한 판단으로 대사를 그르치고 있는 한국정치와 사회면을 쉽게 읽어 볼 수가 있다.

얼마나 더 많은 그들의 누나와 언니, 동생들이 성추행과 성폭력의 대상이 되어야, 피해자들이 되어야, 한국인들이 또 다시 “발끈”하여 피해여성들의 진정한 인권을 위해, 정의를 위해 또 한번의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이 잘못된 버릇을 퇴치하고자 광화문 광장으로 나설 것일까. 혹여, 너무나 깊숙히 스며들어 있는 성추행, 성폭력 문화불감증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난감하기만 하다.

<김성실/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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