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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칼럼] 우리 교회들이 해야 할 남은 숙제

2018-05-03 (목) 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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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아무리 뭐라 해도 ‘구원’에 있다. 전도하다 보면 가끔 이렇게 말하는 이들을 만나곤 한다. 내가 구원 받겠다는 그런 가벼운 주제 하나만을 위해 예수 믿는다?, 그러려면 난 교회 안 다니겠다고. 하지만 이는 잘 모르는 소리다. 지면관계상 다 말할 수는 없으나 구원이라는 주제를 우선삼지 않고는 기독교를 설명할 수 없다. 구원은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매우 ‘무거운,’ 매우 중대한 인생 주제이다.

하지만 이 구원이 한 개인의 문제로 국한되어 이해되어왔다는 세간의 지적은 타당하다. 이렇게 된 데는 서구 신학의 영향이 크다. 특히 서구세계의 중심인 미국에 살면 살수록 느끼는 바인데 미국만큼 개인적인 사회도 없다. 개인의 인권, 개인 사생활, 소수의 견해,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등, 우리는 거의 매일 이런 소리들 속에 휩싸여 산다. 이런 게 미국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기독교 신학도 그렇다. 서구 신학자들에게 성경의 구원은 신앙인 한 개인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머무를 때가 많다.

최근 들어 신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반성이 많아지고 있는 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그 영향력의 길이와 강도가 워낙 세다 보니 이런 개인적인 구원관이 이미 우리 신앙인들의 심리에 깊이 파고든 것도 사실이다. 그로 인해 현대 교회들 안에서 다루고 있는 구원신앙의 많은 내용들이 우리 각 개인의 인생문제 정도로 끝나버리곤 한다.


이런 화두를 꺼내는 이유가 있다. 이 세상엔 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신앙인들과 교회 주변에 늘 포진해있기 때문이다. 포진할 뿐만 아니라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새로운 이슈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나 혼자만 구원 받아 예수 잘 믿는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 그래서도 교회 다니는 신앙인들이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구체적으로 감당해야 할 것인지 하루라도 빨리 그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경은 그 위대한 주제인 구원을 설명할 때 그것을 ‘공동체적’ 관점에서 다룬다는 사실이다. 구원 받은 개인과 구원의 공동체 격인 교회는 그래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구약성경은 물론이고(이스라엘이 ‘교회’니까), 신약성경 절반 이상이 교회를 전제한 구원을 말한다(사도들의 서신이 다 그렇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 구원 받으면 그는 새로운 구원 공동체인 교회에 소속되어 구원의 삶을 배우고 경험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그에게 존재하는 이유이다.

요즘 한국 TV를 보면 유명인사들이 검찰에 줄줄이 소환되고 있는 소식들을 접하게 된다. 그들은 주로 정치적 비리, 금융사기, 성추행, 매관매직, 갑질 행위 등에 연루되어 있다. 안타까운 건 그들 중 상당수가 어느 한 교회를 다니고 있는 신자들이라는 사실이다. 평범한 평신도도 아니고, 교회 내 리더십에 속하는 장로, 집사, 권사들이다. 심지어 대형교회 목회자까지 사기행위로 감옥에 드나들고 있다. 여기서 묻고 싶은 건 이것이다. 그들의 그런 사회적 비리행위들과 그들 각자의 개인적 구원이 서로 상관이 없는 걸까? 우리의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우리가 한국을 오가며 열심히 타고 다니는 한 비행기회사 오너 일가의 갑질 폭로가 연일 특종감이다. TV 화면에 나오는 게 다 사실이라면, 이는 그들의 정신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몰인격적인 대기업의 수장 한 사람의 영향력은 그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기업의 ‘어마어마한’ 사이즈만큼이나 그 영향력도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한 사람이 구원 받아 교회 출석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변화된 인격으로 살아갈 때 그가 속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알게 모르게 커질 수밖에 없다. 그가 큰 조직체를 이끌수록 이는 더 그럴 것이다.

우리 이민교회들도 이제부터는 성도 개인의 ‘인격적 변화’를 가르쳐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과를 제거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분명코 맞는 얘기다. 하지만 그게 구원 얻은 이후의 우리의 인격과 삶의 변화와 무관하게 이뤄진 사건은 아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는가? 그렇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한다. 교회의 남은 숙제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적이며 양심적인 인물들을 많이 양산해내는 데에 있다.

<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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