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만 끝내자, 이 비극

2018-04-27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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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37년 전 실종됐던 남매가 경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친부모를 찾았다. 1981년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김씨 부부가 10살인 아들과 7살인 딸을 충남 아산의 한 시골마을 자신의 부모에게 맡겼었다. 조부모가 별세하자 작은 아버지가 남매를 서울의 부모에게 데려다주는 길에 남매를 잃어버렸고 작은아버지는 얼마 후 사망했다.

서울의 부모는 남매를 찾을 길이 없어 37년 동안 애도 낳지 않고 속을 태우며 살았는데 지난해 7월 충남지방 경찰청이 장기실종전담팀을 가동하며 재수사에 착수했다. 유일한 단서는 남매 사진. 사진 속 오빠의 셔츠에 검정 어깨끈을 책가방 끈으로 추정, 인근 초등학교 기록을 뒤져 마침내 오빠 김군의 생활기록부를 찾았고 한국내는 물론 해외입양아도 추적했다. 드디어 남매의 양부모 주소지를 찾았고 경찰은 국제우편으로 남매의 DNA와 부모의 유전자를 대조한 결과 친자관계임을 확인했다고.

남매는 그새 47살, 44살이 되었고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오랜 세월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줄 알고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친부모와 남매는 다음달 5일 한국에서 만날 예정이라는데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며 이런 경찰관이 있는 대한민국은 아직 살만한 나라라고 다들 말한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남매도 친부모를 찾았는데 고향, 부모, 자녀이름을 아는 1,000만명 남북이산가족은 왜 아직도 못 만나고 있을까?

통일부에 의하면 지난 1988년 등록당시 13만 명이던 신청자가 30년이 지난 지금, 그사이 7만여명이 세상을 떠났고 현재 5만8,000여명만 살아있다. 그나마 80대 이상은 64%. 한반도 분단과 한국전쟁이후 이산가족이 된 이들은 65년 세월동안 어린 아들딸은 70세가 되고 청춘이던 이들은 90세 노인이 되었다. 기억은 전혀 없지만, 이들은 피를 나눈 가족인지라 만나면 포옹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1985년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이 구성되며 이산가족상봉 물꼬가 튼 이래 2000~2015년 20번의 남북이산가족 상봉에서 남북 양측 2만4,000여명이 생사를 알고 만났을 뿐, ‘하늘의 별따기’라는 이 행사 조차 남북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수시로 중단되곤 했다.

지난 22일 CNN 방송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한국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들의 마지막 기회’라고 보도했다. 매일 이산가족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이후 본격적으로 이산가족상봉정례화도 추진되기 바란다. 가장 먼저 모든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서신교환과 영상통화는 언제라도 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북미정상회담에서도 미국 내 이산가족 한인들이 의제로 되어야 한다. 그동안 북한에 가족을 둔 미주한인 일부가 비공식 채널을 통하여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만나기도 했지만 경비가 만만치 않았다.

지난 2016년 12월9일 재미한인이산가족 상봉결의안이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도 통과되었지만 북한의 인권 문제가 제기되면서 별 효과를 낳지 못했다. 미국과 북한 사이가 경색되면서 수천 명 이산가족의 염원은 싹도 자라지 못한 것. 이산가족상봉결의안은 남북이나 북미관계와 상관없이 한결같이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하루종일 일터에 있다가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그곳엔 가족이 있다. 돌아갈 가족이 있다는 것은 세상의 피난처이자 안식처가 있다는 의미도 된다.

가족 앞에서는 이데올로기, 민족, 나라, 그렇게 큰 틀은 필요 없다. 그저 오순도순 밥상머리에 모여앉아 맛있는 밥 먹고 따스한 이부자리에서 팔다리 부딪쳐가며 자는 것, 그것뿐이면 된다. 이리 사소하고 평범한 것이 한국민들에게는 왜 그렇게 힘이 든 것인지. 냉전시대이래 아직도 전쟁 중인 나라에 생이별한 이산가족이라니,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런 비극은 없다. 그만 끝내자, 이 비극.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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