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가 미인(美人)인가?

2018-04-20 (금)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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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고문(古文)시간에 정철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을 읽으며 임금님을 미인으로 표현한 것이 참 이상했다.

임금님은 남자인데 어떻게 미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정철이 동성애를 하는 사람인가? 귀양살이에서 다시 임금님 곁으로 돌아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은유로 표현한 것이 사미인곡이다. 미인을 그리워 하는 절절한 마음으로 송강 정철은 임금님을 그리워 했을까 아니면 그 그늘에 있는 권력을 그리워 한 것일까? 어떤 사람을 미인 이라고 하는 것일까?

몇 년 전에 중국을 한 달 동안 여행한 적이 있다. 중국 사회과학 연구원의 초청으로 30 여명의 동료 교수들과 함께 중국 곳곳을 여행하던 중, 우리는 안내하던 중국 교수가 질문을 했다.


중국 역사상 삼대 미녀를 아시는 분 계세요? 의견이 이리 저리 갈리며 여러 이름들이 올라왔다. 양귀비가 빠지지 않았고, 삼국지에 등장하는 초선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등 사대 미녀를 들어본 적은 있어도 삼대 미녀는 잘 모르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확하게 세 명의 이름을 짚은 것은 물론 나였다. 달기, 서시, 왕소군이 정답이었다.

미인을 가리는 데도 속설과 정설이 있다고 한다. 속설의 사대 미녀와 정설의 삼대 미녀의 차이는 무엇일까? 초선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니까 그렇다 해도 왜 유명한 양귀비 대신 달기가 삼대 미녀로 꼽힐까?

그 대답은 나도 알 수 없다. 나는 다만 어릴 때 십팔사략(十八史略)이라는 간추린 중국역사를 가르치시던 당숙께서 그렇다고 한 것을 기억할 뿐이다.

마치 뉴잉글랜드의 봄처럼 흉노 땅에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다 (春來 不似春)”는 유명한 시를 남긴 왕소군을 제외하면, 삼대미녀와 사대미녀가 모두 빼어난 미모로 나라를 망하게 했거나 어느 인물을 쓰러지게 한 여인들이었고 그들의 마음가짐이나 인격이 별로 아름답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이 과연 미인을 미인으로 만드는 것일까? 미모 즉 겉모습일까? 그렇다는 대답이 절대 다수 일 것이다. 우리의 오관(五官) 중 가장 빠르게 활동 하는 것이 시각,“보는” 것이니 아름다운 외모를 보고 그에 빠져드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미인은 행복한 삶을 살지 못 한다(美人薄命)는 말이 있을까? 미인 영화 배우들을 돌아 보아도 행복하게 여생을 마친 이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은 당연히 외적인 미모만으로는 참 아름다움을 이룰 수 없다는 대답을 유도하기 마련이다.

내적인 아름다움, 자신의 미모에 빠져있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애환을 같이 나누고 배려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없는 아름다움은 파괴적인 독소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이 미인박명이라는 말 속에 숨겨진 것이 아닐까?

송강 정철은 아름답게 자신의 글 속에 그렸던 그 미인을 권력이라는 뒷그림자를 지우고도 그렇게 연모 할 수 있었을까? 항상 같이 있고 싶은 사람, 같이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 지는 사람, 공기 처럼 있는지 없는지 때로는 느끼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참 미인이 아닐까?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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