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남북녀

2018-04-20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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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남북 정상회담 주요의제로 한반도의 비핵화와 함께 65년간의 한반도 정전 협정체제를 끝내고 평화 협정체제로 바꾸는 방법과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벼락처럼 통일은 오지 않는다. 분단된 나라가 하나가 되려면 일회성 스포츠나 문화교류를 넘어 수년간 지속적으로 많은 일을 함께 해야 한다. 껄끄러운 정치적 관계의 물꼬를 트는 데 종종 스포츠와 문화가 이에 공헌한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 1971년 4월10일 미 탁구선수단 15명이 중국 마오저뚱의 공식초청으로 베이징에 도착했다. 그 10개월 뒤인 1972년 2월 닉슨과 마오저뚱이 베이징에서 만났다.미국은 중국이 잘하는 탁구로 죽의 장막 문을 두드렸고 79년 1월 중국과 정식 수교했다.


독일 통일에도 문화 교류가 한 몫 했다. 1986년 문화협정, 1987년 학문·기술협정의 완성이 그것이다.

1988년 동독 음악인들이 서독에서 많은 공연을 했고 서독 음악인들도 동독에서 수시로 음악회를 열었다. 전쟁으로 뒤바뀌진 미술 소장품 원상회복작업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1985년부터 동서독 도시간 자매결연을 하여 정보교환, 체육문화행사 등으로 동독과 서독인의 접촉과 왕래를 증가시켰다.

2~3년간 문화협정 프로젝트를 20개 이상 하면서 다같은 한 민족, 공동의 역사와 공동의 문화, 공동 언어를 갖고 있다는 것을 모두의 의식 속에 강화, 회복된 민족의 정체성은 분단 극복에 기여했다.

지난 2016년 1월11일 독일정부는 전설적인 영국 뮤지션 데이빗 보위의 사망을 애도하며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라고 헌사 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에 대한 그의 공헌에 감사한 것이다. 어떻게 영국 뮤지션이 독일 통일에 이바지 한 것일까? 보위는 서베를린에서 3년간 살면서 장벽 바로 옆 스튜디오에서 ‘히어로스(Heroes)'를 녹음했다. 장벽에서 격정적으로 포옹하는 한 연인을 발견하고 만든 노래였다.

‘난 기억할 수 있어, 벽에 기대서서. 총알들이 우리 머리 위를 날아다녀/우리는 키스했고 마치 아무 것도 무너지지 못할 것처럼’ 이 노랫말은 사랑과 젊음이 모든 분단을 극복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1987년 브란덴부르크 장벽 인근에서 ‘히어로스’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동베를린 젊은이 수백 명이 장벽으로 몰려들었다. 동독 정부가 물대포로 진압을 해도 젊은이들은 장벽 위로 올라가 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에서 같은 노래를 장벽을 사이에 두고 부르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처연하다. 공연 일주일 뒤 미 레이건 정부는 베를린 장벽 붕괴를 촉구했고 드디어 1989년 11월9일 독일국민들은 달려가 동독과 서독을 가르던 브란덴부르크 벽을 망치로 부수었다.

그렇다면, 남과 북의 통일을 앞당길 무대는 어디일까? 비무장지대? 판문점? 판문점에서는 1998년 첼리스트 정명화가 협연한 스위스의 카르미나 4중주단의 연주회가 열린 적이 있다. 중립국 감시위원단 스위스랜드 잔디밭에서 남북 분단 후 처음 열린 연주회였다. 또 DMZ는 남북 각 2Km 지역으로 지난 70여년 인적이 끊어져 야생동물들이 살고 세계 최대 지뢰 매설지이기도 하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DMZ의 비무장화가 논의될 예정이라 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문화협정 및 학문·기술협정, 스포츠 교류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바란다. 예술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누구나 공감하는 세계이다.

오는 가을 남북합동예술단의 ‘가을이 왔다’ 공연이 열릴 때 국민가수 조용필이 만든 ‘남남북녀’(南男北女)가 판문점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 영토에서 동시에 불려 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 노래 한곡이 판문점과 비무장지대의 철망을 타고 넘나들며 데이빗 보위의 ‘히어로스’ 못지않게 남북통일에 기여하는 날이 올까?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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