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폴 라이언의 정계 은퇴

2018-04-14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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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는 가정이다. 그 구성원은 가족이 된다. 가족은 대부분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다. 가족이 많은 가정은 구성원이 10명이 될 수도 있다. 아들딸을 많이 낳으면 그렇게 된다. 가족이 적은 가정은 자식 없이 부부만일 수도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하는데 혼자도 가정일 수 있을까.

가정(家庭)의 의미는 의식주 활동을 공유하는 생활공동체다. 고로 혼자 사는 것은 가정이라 할 수 없다.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만일 때에라도 가정은 될 수 있다. 또 홀어머니나 홀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자식들이 있을 경우 가정이랄 수 있겠다. 둘이든 셋이든 생활공동체로 의식주활동을 공유하기에 그렇다.

폴 라이언 미 하원의장(48)이 지난 11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잘 나가던 젊은 정치가로 앞으로 대통령 자리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왜 갑자기 정계은퇴를 선언했을까. 이유는 가정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란다. 그는 “남편과 아버지로서 더 많은 시간을 가족에 충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가. 1998년 28살의 나이로 첫 하원의원이 된 후 계속 9번이나 당선된 폴 라이언. 그는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였을 때 공화당 하원의장으로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한 편으로 트럼프를 도왔지만 또 한 편으론 그의 행보를 비판도 했다. 위스콘신 주 제인즈빌에서 태어난 그. 정치는 뒤로하고 가정을 택했다.


5년 전 세상을 떠난 소설가 최인호. 그가 남긴 말.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은 집이라고 믿는다.” 집이 어딘가. 가정이다. 가족이 머무는 곳. 그곳이 집이다. 바로 홈(home)이 집이다. 최인호는 가족을 삶과 세상의 중심으로 여겼다. 특히 아내와는 더 했다. 친구들이 섭섭할 정도로 집에 돌아가 아내와 수다 떨기를 좋아했단다.

최인호는 고교 2학년 재학 중 <벽구멍>이란 단편이 일간지 신춘문예에 입선, 문단에 데뷔했다. 이 후 사망(67)할 때까지 남긴 작품들은 수 없이 많다. 특히, 그는 1975년부터 <샘터>에 <가족>이란 제목으로 작품을 실었고 2009년까지 무려 34년 동안 연재했다. 가족과 가정을 가장 중하게 여긴 그의 마음이 모두 여기 담겨 있다.

영국에서 ‘가정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현상 모집했다. 가장 많은 답들이다. “투쟁이 없고 사랑으로 가득한 세계. 작은 자가 크고 큰 자가 작은 자가 되는 곳. 땅 위에 있어서 인간의 허물과 실패를 숨겨 주는 곳. 애정의 중심지요 마음에 있는 최선의 소원이 붙어 있는 곳. 아버지의 왕국, 어머니의 세계, 아이들의 낙원“등이다.

낙원은 하늘 위에 있을까 아님 저 우주 밖에 있을까. 낙원, 즉 파라다이스(paradise)는 근심 걱정이 없이 행복을 누리는 곳을 뜻한다. 낙원은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요 우주 밖에 있는 곳도 아니다. 낙원은 곧 가정 안에 있다. 가정은 근심 걱정을 풀어 놓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곳이다. 가정은 행복의 원천이요 샘이 된다.

한 친구의 말이다. 70평생이 되도록 살면서 늘 궁금해 하는 게 있단다. 그건 자연의 법칙 중 하나인 줄은 모르겠지만 동물의 가족사랑 같은 거란다. 아무리 사나운 짐승도 제 가족은 상해(傷害)하지 않는 것이 동물의 가족사랑 아니냐는 말이다. 그렇다. 동물들에게도 가족은 제일 보호해야 하는 1순위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동물 중에서도 가족애가 가장 깊은 코끼리. 새끼 코끼리가 사자나 맹수에게 공격을 받을 때엔 온 무리가 나서서 새끼를 보호한다. 암컷으로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무리를 떠나지 않고 나중엔 지도자 암컷이 돼 무리를 이끈다고. 늑대와 너구리 등의 일부일처제 동물. 잉꼬새의 사랑. 이 같은 가족애는 아마도 하늘이 내린 것 아닐까.

주말 아빠가 안 되고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정계를 은퇴한다는 폴 라이언. 아내하고 노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며 아내와 수다 떨기를 좋아했던 작가 최인호. 허물과 실패를 숨겨주는 곳이 가정이라는 영국 사람들. 가족을 사랑하는 동물들의 세계 등등. 천국이 따로 있나. 가정과 가족이 있는 곳이 곧 낙원임에야.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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