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제 목소리를 높일 때이다

2018-04-14 (토) 박미경/ 편집실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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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길 지나치는 길목에 몇 개의 학교를 마주한다. 매일 무심코 지나는 그 곳에 어느 날 하트모양의 보드가 몇 개 밖에 걸려있었다. 자세히 보니 누군가를 추모하는 글귀와 이름이 적혀있었다. ‘아! 이 아이들이 플로리다 총기사고 아이들을 추모하는구나.’
얼마전 플로리다 총기난사 생존학생들이 주도한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 시위가 전국을 뒤덮었다. 전국의 학생들이  "다음은 나인가?" 등의 피켓을 들고 총기규제를 촉구하는 시위를 했다. 아마도 이 학교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다.

지난 샌디훅 초등학교의 총격사건 이후 미국의 뿔난 엄마들이 모여 총기규제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처음에 그들은 연방정부에 편지를 쓰고, 총기협회에 공조하는 기업에 협박도 하고, 읍소도 하며 제휴를 막았다. 미약했던 그들의 활동은 SNS를 통해 들불처럼 번졌다. 그리고 이번 학생들의 시위에도 적극 참여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들 엄마들의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처음엔 그저 자원봉사자 모임에 지나지 않던 엄마들의 모임이 지금은 전국을 움직이는 목소리를 내고 입법기관에 도전장을 내는 행동하고 추진하는 힘있는 엄마들의 단체가 되었다.

한국에도 엄마들의 행동반경이 커지고 있다. 꽃피는 4월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을 잃은 엄마들과 이들의 고군분투를 지켜보며. 안타까워하고 지지하며 함께 손잡고 나선 엄마들이 있다. 이들은 국가권력에 의해 아이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는 것을 막고자 침묵을 깨고 앞장서 싸운다. 그들은 이제 연대하는 방법을 배워나가고, 목소리를 내는 법을 터득한다. 그리고 SNS를 통해 또다른 힘을 모으는 것도 안다. 이제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 부여받은 생명은 권리이며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천부인권이다. 이 천부인권을 지켜주는 것은 안전이다. 총기로부터, 사고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부터 생명은 지켜져야만 한다. 그리고 국가는 이것을 지켜줘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사회적 참사나 폭력의 피해자는 죄인이 아니다. 만약 국가가 개인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다면 스스로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 조직을 만들어야한다. 조직적인 목소리를 통해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인정받고 안전하게 살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교황은 지난 종려주일 미사에서 “어른들이나 지도자들이 종종 부패하거나 침묵할지라도 너희 청년에게는 외쳐야 할 것들이 있다”, “침묵하지 말고 목소리가 들리게 하라"고 세상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높일 것을 호소했다.

미국에서 테러보다도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총기사고, 그리고 권력에 의해 구조 방기된 세월호 참사. 이들 생명과 안전의 책임은 분명 국가의 몫이다. 하지만 국가가 제구실을 하도록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우리는 누구나 내일의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책임을 방기한 국가를 향해, 권력을 향해 안전벨트를 착용하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낼 때 생명과 안전은 지켜진다. 자발적인 참여와 소통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이제 목소리를 높일 때이다.

<박미경/ 편집실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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