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음의 시와 공간이 가지는 의미

2018-04-07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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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누구나 다 한 번은 죽는다. 사람만 죽는 게 아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은 다 죽는다. 제 아무리 재산과 명성을 많이 가진 사람도 때가 되면 죽는다. 그러니 재물과 명성이 있다고 그렇게 부러워 할 필요는 없다. 그도 죽음 앞에서는 이슬처럼 사라질 것이니 그렇다. 이렇듯 죽음은 모든 생명에게 평등하다.

가끔 길을 가다가 비둘기의 죽음을 본다. 자동차에 깔려 납작하게 죽어 있는 모습. 얼마나 차가 지나갔는지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다. 거죽만 남아 있다. 그런 비둘기의 죽음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참 안됐다” “비참하게 죽었다” “저 비둘기에게도 영혼이란 게 있을까” “인간의 죽음과 저 비둘기의 죽음은 뭐가 다를까” 등등.

생로병사(生老病死). 생물과 만물은 이 길을 걷는다. 태어난다. 늙는다. 병든다. 죽는다. 전자현미경으로 보아야 보이는 미생물도 태어남과 죽음이 있다. 우주에 떠도는 별들도 마찬가지. 태어나고 죽는다. 생명과 만물을 포함하고 있는 이 우주도 언젠가는 사라지지 않을까. 인간의 인식이 다다르지 못하는 그 시각에 닿으면.


인간의 죽음. 누구나 다 죽는데 어떻게, 언제 죽느냐가 문제다. 대부분 자연사(自然死)로 죽어가는 생물들이야 그렇다 치자. 그러나 인간의 죽음은 자연사건, 돌연사(突然死)건 죽음의 시(時)와 공간(空間)에 따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살다 수명이 다하여 죽음을 맞는 사람에겐 참 복이 많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지난 3월23일.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 트레브. 한 슈퍼마켓에서의 인질극. 인질범은 테러범죄조직인 이슬람국가(IS)의 추종자. 인질 두 명이 죽었다. 남아 있는 인질은 10여명. 시간을 끌면 인질들이 모두 죽을 수 있다고 판단한 프랑스 고위군인경찰 벨트람 중령(45). 인질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인질이 되겠다며 슈퍼로 들어갔다.

그는 테러범 몰래 자신의 휴대폰을 통화 상태로 켜놓은 채 테이블 위에 놓았다. 덕분에 동료들은 슈퍼 내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인질을 구출할 수 있었다. 벨트람(45)은 어떻게 됐나. 테러범은 협상을 위해 들어간 벨트람을 총격했고 벨트람은 다음날 병원에서 사망했다. 밸트람이 죽어간 시와 공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살신성인. 공자 논어(論語)의 ‘위령공편’에 나온다.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삶을 구하여 인(仁)을 저버리지 않으며 스스로 목숨을 죽여서 인(仁)을 이룬다”. 벨트람이 논어를 알았을까. 아니. 어떻게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스스로 인질을 자청해 들어갔을까.

한 번 죽는 몸. 벨트람처럼 자신의 죽음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택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귀하랴. 그런데 못하니 어쩌랴. 공자의 사상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인(仁)이란, 사람다움과 사람을 사랑함을 나타낸다. 예수도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복음 15장13절)고 했다.

죽음의 시와 공간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타자를 위한 것일 때 그 의미는 별처럼 반짝이게 된다. 한 친구는 만약, 자신이 뇌사(腦死/brain death)상태에 있을 때엔 살아 있는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서명했다고 한다. 얼마나 값있는 죽음일까. 가끔 언론에서 이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접할 때 마다 저절로 경의로 표하게 된다.

다큐멘터리 채널 디스커버리(Discovery)가 선정했다. 가장 오래 사는 동물은 해저에 사는 대양대합조개로 평균수명이 400년. 2위는 북극수염고래(211년). 다음으로 붉은 바다성게(200년)와 갈라파고스 거북이(177년)등이다. 식물 중엔 1,000년이 넘게 사는 나무들이 있다. 인간은 100세 시대. 80전에 죽으면 쪽팔린다고 한다.

죽음의 시와 공간이 가지는 의미. 벨트람처럼 살신성인은 못하더라도 폐를 끼치다 죽었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겠지. 누구나 다 죽음을 맞이하니 부러워 할 것도 움츠려 들 필요도 없다. 죽음은 평등하다. 오늘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살아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죽기 전까지는 사람다움으로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면 좋겠다.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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