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이 오는 길목에서

2018-04-03 (화) 홍성애/ 뉴욕주 법정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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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봄이 다가오기가 참 힘든 가 보다. 뉴욕지역엔 3월 들어 세 차례나 눈폭풍이 몰려왔고, 잠간 따뜻했던 햇살에 고개를 살짝 내밀려던 꽃망울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다.

사람들은 봄철을 좋아한다. 죽은 듯 까칠했던 나무가지에서 움이 트고 여린 순을 내밀 때 세상은 온통 연초록색의 환상적인 세상으로 바뀐다. 아주 파랗지도, 그렇다고 노랗지도 않은 그 기막힌 연두색은 신이 내린, 자연만이 줄 수 있는 신비의 색이다. 수줍은 듯 가만가만 살포시 생명력을 지닌 채 만물이 소생하는 기운을 한껏 뿜어내는 모습에서 우리는 갈아 앉았던 마음이 설레고 소망을 느끼며 새 기운을 듬뿍 받는다.

몇 해 전, 벚꽃 피던 시절에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다. 요코하마에 갔을 때 마침 벚꽃이 만개하여 벚꽃 축제가 한창이었다.


개천 양편 뚝으로 끝없이 늘어선 수백 그루의 벚꽃나무 아래 사람들은 돗자리를 깔고 작은 술상을 차려 놓고 안주와 함께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개천은 물 위로 떨어진 벚꽃 잎들로 눈부신 분홍색 물길이 되어 꿈결같이 유유히 흐르고 나무가지엔 가지각색 모양의 예쁜 오색 등이 매달려 있어 한껏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화사한 봄날에 사람들은 소박하지만 아주 낭만적으로 즐기는 모습이다. 한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일본 악기인 샤미센을 켜며 흥겹게 옛노래가락인 듯 싶은 일본 전통가요를 연신 부르고, 주위 사람들은 거기 맞추어 따라 부르거나 박수로 혹은 젓가락으로 열심히 가락을 두드린다.

신이 난 할아버지는 더욱 목청을 돋우어 노래하면서 우수꽝스런 몸짓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신바람나게 만들고 있었다. 구운 오징어, 찐 옥수수, 가락국수, 오뎅, 소세지등 노점상들이 줄줄이 펼쳐 놓은 먹거리들을 들여다 보며 열심히 고르는 이들 역시 마냥 즐겁기만하다.

뭘 먹을까, 어떤 게 맛있을까 하는 고민은 얼마든지 해도 좋다는 듯 고르기를 지연시키고 있다. 그 정경은 내가 본 어느 장면보다 정겹고 소탈하고 행복해 보였다. 행복한 순간의 사람들의 표정은 바로 이런 거구나 싶은 얼굴들이다.

이처럼 봄이 줄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을 사람들은 각 곳에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기나 긴 겨울, 매서운 추위를 웅크리며 견딜 수 있음은 봄은 꼭 온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비록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불행한 일들..... 어처구니 없는 총기사건들, 또 한 사람의 한국 전직 대통령의 구속사태, 미투운동의 확산, 요새는 좀 희망적인 양상이지만 언제 또 어떻게 급변할지 모르는 한반도의 정세 등, 심리적으로 긴장되고 때로는 분노케 하는 힘든 나날이지만 좀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해 보는 마음으로 이 봄을 맞이하련다.

앞으로 좋게 진전하려면 그만한 대가와 진통을 치러야 함이 세상 이치이거늘 고난과 시련을 잘 견디고 옳은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가노라면 봄은 반드시 우리 곁을 찾아 올 것이라는 신념의 끈을 꼭 잡고 이 봄을 기다린다.

<홍성애/ 뉴욕주 법정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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