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달걀과 매듭

2018-03-30 (금) 민병임 논설위원
크게 작게
것이 올들 말듯, 계속 외투를 입게 하더니 어느새 부활절을 맞았다. 상가 윈도우를 장식한 예쁜 색깔로 물들인 부활절 달걀을 보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컬럼버스(1446?~1506)의 달걀이 떠오른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컬럼버스는 소년시절부터 ‘황금이 가득 찬’ 섬을 찾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훗날 에스파냐 여왕 이사벨라의 도움을 얻어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항해에 나서 험한 고생 끝에 새로운 땅을 발견했고, 이곳을 인도의 서쪽이라 믿었다. 실은 이 땅이 ‘아메리카 대륙’이었지만 그는 생전에 몰랐다. 컬럼버스는 3회에 걸쳐 이곳을 탐험하였으나 향료와 황금을 찾는데 실패했다. 에스파냐 왕실은 후원을 중단했고 주위사람들은 그를 헐뜯고 빈정댔다.

“아무라도 배를 몰고 대서양 서쪽으로 가면 신대륙을 발견할 텐데...”
“당신은 그렇다면 달걀의 뾰족한 곳이 밑으로 가게 탁자 위에다 세울 수 있겠소? ”
“그까짓 걸 못해?” 큰소리치던 사람과 듣고 있던 사람들이 제각기 세워보려고 애썼으나 아무도 달걀을 세울 수 없었다. 그러자 컬럼버스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소.”


컬럼버스는 달걀의 뾰족한 부분을 탁자 위에 툭 쳐서 약간 깨뜨린 다음 똑바로 세웠다.
“그렇게 세우는 거야 누가 못해!” 여러 사람이 말하자 컬럼버스는 말했다.
“바로 그거요. 누가 세운 뒤에는 아무라도 쉽게 세울 수 있지요.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탐험도 이와 마찬가지 아니겠소? 누가 한 다음에는 아무라도 쉽게 하는 법이오. 그러기에 남이 하지 못한 일을 처음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오.”

역시 컬럼버스다. 알렉산더 대왕(B.D.356~B.C.323)의 일화도 유명하다.
마케도니아에 왕위 다툼으로 큰 혼란이 있자 이를 수습한 왕이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립포스 2세다. 알렉산더는 그리스 및 마케도니아 북방을 안정시킨 후 동방아시아 원정에 올라 페르시아군과 첫 전투에서 치열하게 싸워 승리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자 소아시아 연안의 도시들이 대부분 저항 없이 항복해 왔다. 알렉산더의 원정군이 고르디온이란 곳을 지날 때 신전 기둥에 밧줄로 복잡한 매듭이 매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지방에는 그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된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영웅들이 이 매듭을 풀려고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 전설을 들은 알렉산더는 단칼로 그 매듭을 내리쳐서 풀어버렸다. 이후 알렉산더는 그리스,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우리가 집안일을 하다보면 물건이 풀어지지 말라고 꽁꽁 묶은 보자기나 비닐봉지의 매듭을 필요시 풀려고 끙끙 맬 때가 있다. 뜨개실, 수실이 엉켜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 지 난감하기도 한다. 장기간 사용하는 헝겊보자기인 경우 어떻게든 풀어야 하지만 비닐봉지인 경우 여러 번 풀려고 해도 잘 안되면 미련 갖지 말고 가위를 들어 싹둑 잘라버리자.

뜨개실이나 수실이 복잡하게 얽혀버렸을 때도 그렇다. 시작을 찾으면 끝도 찾기 쉬운데 아무리 실을 빼내려 해도 더 단단하게 얽힌다면 그냥 미련을 버리면 된다. 다시 시작점을 찾아 잘라진 둘을 서로 묶어 잇자.

화려한 봄 4월은 왔는데 우리네 삶은 왜 이리 갈수록 복잡하게 꼬여 가는 것인지, 너무 오래 고민하지 말자. 해야 할 일들을 살펴본 다음 꼭 해야 할 일 한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무시해버리자. 일어나지 않은 일이나 설사 일어난 일이라 해도 내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일을 갖고 고민하지 말자.

알렉산더는 결코 풀지 못한 매듭에 매달리지 않았다. 세상살이도 그렇다. 복잡하게 엉켜 풀 방법이 없다면 그냥 버리면 된다. 단순하게 접근해가면 의외로 문제점이 쉽게 풀린다. 욕심, 미련이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봄에는 마음을 비우고 시작하자. 삶이 간편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찰나의 봄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