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소식을 전하는 사람

2018-03-26 (월) 최효섭/ 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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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목사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앨라바마에서 첫 설교를 할 때 자기를 이렇게 소개하였다. “나는 여러분에게 봄소식을 전하려고 왔습니다.” 사실 복음이란 말의 그리스어는 ‘유앙겔리온’인데 ‘기쁜 소식’이란 뜻이다. 봄소식이란 말 속에는 곧 피어날 꽃들의 향기와 따뜻한 봄바람과 추운 겨울을 마감하는 새 출발의 의미가 모두 들어있다.

캘리포니아 주 산 알토스에 ‘봄소식을 전하는 우체부’란 별명으로 불리는 우체부 힐 씨가 있다. 그의 우편물 배달 구역은 50마일이란 넓은 지역이다. 그는 “군데군데에 꽃씨를 뿌리면 모두에게 기쁨을 줄 것이다.”고 생각하여 즉시 실천에 옮겼다. 힐 씨의 좋은 취지를 듣고 여러 사람들이 꽃씨를 기증하였다. 1년 후 삭막한 광야는 꽃으로 덮였다. 행복은 누군가가 먼저 시작해야 되는 것이다.

필자는 뉴욕의 젊은 검사들로 조직된 ‘특별타격대(Strike Force)’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들의 경험으로 볼 때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최선의 힘은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남을 미워하는 자는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결과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자가 파괴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소위 ‘부활의 신앙’은 부정적인 인간을 긍정적인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위대한 설교가였던 윌리엄 월프 목사가 링컨 대통령과 두 시간 대화를 나누고 이런 소감을 말하였다. “링컨을 희망의 신학자라고 평하고 싶다. 그는 성경을 깊이 알고 있었으며 그의 생각은 매우 긍정적이고 희망에 차 있었다.” 바울은 크리스천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편지(고린도 후서 3:3)라고 정의하였는데 꽃향기와 훈풍을 담은 봄소식을 전하는 자란 뜻이다.

나무도 풀도 기지개키며 일어서는 이 부활의 계절에 당신도 긴 동면에서 일어나라. 아픈 상처와 쓰라린 과거에서 일어나 새날을 바라보라. 하늘 봄기운에 당신도 꿈틀거려야 하지 않겠는가! 너무나 오랫동안 맥 빠져 누웠던 벌레의 온상에서 일어나 움직이는 환희와 사랑하는 기쁨을 맛보지 않으려는가! 나의 좁은 고치에서 탈출하여 나비처럼 훨훨 날아야 한다. 아, 봄이다. 부활의 계절이다. 봄의 에너지를 받아라.

뉴저지 주에서는 봄이 되면 개구리 행진으로 장관을 이룬다. 호수가 많기 때문에 개구리들이 호수에서 나와 산란을 위하여 길을 건너간다. 하이웨이 횡단은 위험천만이다. 그러나 개구리들은 후세를 위하여 봄이라는 아름다운 계절을 잊지 않고 결사적인 행군을 감행한다. 사람도 동물도 다음 세대를 위하여 고통을 감수한다. 그것은 미래에 희망을 두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두 글자만큼 위대한 언어는 없다. 희망은 당신의 시간에 활력을 주고 당신의 앞날에 밝음을 약속한다. 희망은 사랑에 의하여 생기고 사랑은 희망에 의하여 키워진다. 사랑하는 자의 그 빛난 눈동자를 보라. 그것은 희망의 샘이 솟고 있다는 증거이다. 아 봄이다. 부활의 계절이다. 다시 일어나라!

미국에 ‘제퍼슨 성경’이라는 것이 있다.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유명한 대통령이지만 그가 편집한 ‘제퍼슨 성경’은 매우 엉뚱한 성경이다. 그는 성경 속의 모든 기적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가 이성적(理性的)으로 믿을 수 있는 부분만으로 편집하였다. 이 ‘제퍼슨 성경’의 마지막은 이렇게 맺어졌다. “그들은 예수의 몸을 무덤 속에 안치하고 큰 돌로 입구를 막은 후 그곳을 떠났다.”

만일 그리스도의 생애가 제퍼슨의 생각대로 무덤의 돌문에서 끝났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무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예수의 부활은 온 인류에게 활력소가 되고 사람들의 가슴을 끓게 하고 좌절에서 일으키는 에너지가 되었다.

<최효섭/ 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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