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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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3 (금) 최동선/커네티컷 전 한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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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어느덧 3월 중순을 넘어 섰는데도 제대로 된 봄을 느껴볼 겨를도 없이 폭설이 내렸다. 아직은 겨울이 물러 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봄이 한 걸음 물러선 거라고 여기면서도 그럴수록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왠지 더 간절해진다.

겨우내 죽어 있던 묵은 가지에서 성급하게 고개를 내민 여린 새순이 다칠까 마음이 쓰이고,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진 가지가 안쓰럽다. 내가 마주한 자연에서 겸허하게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묵상하게 하는 이 순간이 바로 사순의 시기임을 새로이 깨닫는다.

몇 주 전부터 주일 미사를 마친 후 주변의 주립공원을 찾아 가고 있다. 아직은 짧은 해가 허락해야 하는 짜투리 시간이지만 트레일을 따라 걷다보면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숲이 숨어 있었나 싶어 감탄을 하곤 한다. 내가 그동안 가까이에 있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 채 먼 곳만 그리워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겠다.


철이른 공원은 인적이 드물어 어쩌다 마주치는 사람과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게 한다. 아직은 시즌 개장 전이라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것도 왠지 덤으로 받은 선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겨우내 운동을 게을리 하여 몸집을 불린 나를 채근하는 아내의 제안으로 시작을 했지만, 지도에서 갈 만한 스테이트 팍(State Park)을 찾아내고 미지의 장소를 방문하는 즐거움은 기대 이상이었다. 올해 안에 가까이 있는 주립공원은 모두 방문해 보리라는 호기로운 목표까지 세우고 나니 주말이 기다려진다.

투명한 햇살에 묻어 온 바람이 아직은 기세등등하지만 그래도 산 속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숨가쁘게 올라가거나, 호수나 바닷가에 난 산책로를 따라 터벅터벅 걷다보면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하나씩 이름을 달고 고개를 내민다. 그저 사물로써 존재했던 것들도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니 모두 의미를 갖는다. 늘 보아 왔던 산이 그렇고, 그 산 아래 나무와 빈 숲도, 그리고 그 빈 숲을 지나가는 바람조차 일상에서 벗어나니 자유롭다.
낯선 동네에 들어서는 것도 설레고, 처음 본 공원의 풍광에 반해 다른 계절의 모습이 궁금해 졌다.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을 첫째, 먹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용모. 셋째,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남과 겨루었을 때 한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했을 때 절반 정도에게만 박수를 받는 말솜씨.’ 라고 했다.

결국 플라톤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들은 완벽하고 만족할 만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행복이란 완벽한 상태를 지키기 위해 걱정하기 보다는 적당히 모자람 속에서 그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짧은 해를 따라 공원 곳곳에 발 도장을 찍는 동안 내 숨소리를 듣는다.

순간의 느낌을 작은 노트에 옮겨 놓으며 작은 희열을 느낀다. 그러면서 행복은 이렇게 순간 순간 느껴지는 것이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본다. 적당한 추위와 피로를 한 잔의 커피로 달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산으로 넘어가는 햇님이 배웅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서둘러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날의 하루를 정리해 블로그에 올린다. 비록 지금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지만 언젠가 정리 된 기록을 공개 할 날을 기대한다.

어차피 행복의 기준은 내가 정하는 것이라면 올 봄에는 숨은 조각들을 찾아 천천히 맞춰 가며 삶의 시선을 조정해 볼 참이다.

<최동선/커네티컷 전 한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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