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등급·숙성 등도 중요하지만 이젠‘고기’아닌‘요리’로 즐겨볼까

2018-03-21 (수) 이해림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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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곁들이 음식으로 궁합 맞추고, 그날그날 최고의 부위를

▶ 스시집 오마카세처럼, 요리사가 코스 구성해 주기도


소고기는 비싸다. 시장 경제의 수요 공급 법칙을 떠올리지 않아도 그 이유는 알 수 있다. 맛있지만 귀하고, 그래서 비싸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프리미엄 소고기 외식 시장은 점점 더 비싸지는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다.

소고기 먹는 방법은 순전히 재료 위주였다. 1++ 등급, 또는 그 이상의 엄청난 마블링은 소고기 외식 시장의 첫 번째 프리미엄 가치였다. 동시에 각종 특수부위는 소고기 미식 경험의 척도로서 두 번째 프리미엄을 형성했다. 거기에 얼마나 좋은 숯을 쓰는가, 밑반찬과 양념이 무엇이 나오는가 정도가 약간의 가치를 보태는 형태다. 가치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숙성이 대두됐다. 스테이크 식당발 돌풍을 일으키며 등장해 이제 시장에 안착한 ‘드라이 에이징’, 그리고 재평가되고 있는 ‘웻 에이징’은 숙성을 통해 재료의 부가가치를 올린, 세 번째 프리미엄이다. 특수부위도 꾸준히 ‘개발’되어 요즘은 등심에 기름층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등심덧살’을 떼서 만든 특수부위가 최고 인기를 누린다. 굽은 새우등처럼 생겨 ‘새우살’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부위다.


등급, 숙성과 부위라는 세 가지 핵심적 가치가 부각되면서 식당조차도 요리가 아닌, 재료를 내세웠다. 우리는 그간 고깃집에 요리를 먹으러 간 것이 아니라 재료를 먹으러 갔던 것이니 고깃집은 엄밀히 말하면 식당이 아니라 정육점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정육식당’과 고기 전문점의 정체성 차이가 점차 흐릿해지기도 했다.

소고기 외식 시장의 특이점,

프리미엄화

이미 또다시 가치 포화 상태에 이른 소고기 외식 시장을 두고, ‘소고기 먹보’들은 더 맛있게 소고기를 먹는 방법을 연구했다. ‘재료를 팔던 것을, 요리답게 팔면 되겠구나’ 이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은 식당을 식당답게 했다.

재료가 아닌 요리를 앞세운 ‘프리미엄 소고기 전문점’ 또는 ‘한우 오마카세’라는 부류의 식당들이 등장했다. 강원 횡성군에서 시작해 2015년 서울 신사동으로 상경한 ‘우가’, 그리고 2015년 마장동 ‘본앤브레드’가 등장하며 프리미엄 소고기 전문점과 한우 오마카세가 각각의 아이디어와 콘셉트로 개성과 맛을 뽐내기 시작했다. ‘소꿉’ ‘모퉁이우’, ‘WX’, ‘꿰뚫’ ‘온도’ 등이 그 예로, 서울 강남구 청담동과 도산공원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일대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하이엔드 초밥 전문점 등과 비슷한 가격대로 안착했다. 1인당 10만원대 중반부터 시작되니 주변 파인 다이닝 물가, 또는 기존의 고급 소고기 전문점과 양적, 질적으로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도 아니다.

프리미엄 소고기 전문점이라는 전자의 정의는 기존의 고급 전문점들과의 구분이 다소 모호하다. 이들 전문점의 공통점은 이전의 고깃집들보다 좀더 요리에 치중하고, 소고기 중 가장 맛있다고 이름난 것들을 가격에 구애 받지 않고 들여 놓는, 그야말로 ‘프리미엄의 끝’에 있다는 것이다.

색다른 형태는 한우 오마카세다. 초밥 식당에서 그날그날 가장 좋은 재료로 초밥 코스를 요리사가 알아서 주도록 ‘맡긴다’는 의미를 차용해 한우도 그와 같이 그날그날 가장 좋은 부위를 요리사가 알아서 코스로 구성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단품 요리도 아니요, 고정된 코스 요리도 아니라 한국어에 없는 개념이다. 국내 유통되는 고급 소고기 중 가장 비싼 한우를 오마카세의 형태를 빌어 융통성 있는 코스 요리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청담동과 도산공원 일대에서 일었던 하이엔드 초밥 전문점 붐이 지나간 후 초밥 오마카세 코스의 가격이 저가, 중가, 고가, 그리고 하이엔드로 분류되어 ‘시장 민주화’를 이룬 것을 본다면, 재료에 따라 다양한 값이 형성되는 소고기 역시 초밥 오마카세처럼 다양하게 분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형태의 식당에선 고기만으로 코스가 되지 않는다. 고기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곁 반찬, 또는 코스의 다른 음식들을 함께 구성해 최적의 흐름을 찾는다. 알다시피 다른 음식 없이 고기만 많이 먹기는 참 힘들다. 특히 마블링이 많은 부위일수록 뒤로 갈수록 물리는데, 오마카세에선 다른 음식을 통해 입맛을 환기시키고 소고기 맛을 끝까지 최적, 최고로 볼 수 있게 한다.

고기가 서 말이라도 잘 구워야 제 맛이다. 고가를 판매전략으로 내세운 일부 고깃집들이나 제대로 교육 받은 직원이 불 곁을 지키고 최적의 상태로 고기를 구워 줬지, 대부분의 고깃집들은 손님이 ‘셀프’로 굽게 하거나, 숙련되지 않은 직원에게 불판을 맡겨 고기를 망치기 일쑤였다. 모처럼 먹는 비싼 소고기를 가장 완벽한 상태로 구워주는 기술을 가진 이가 ‘굽기 전문’ 셰프가 손님 앞에 나서 ‘요리해주는’ 것이 프리미엄 소고기 외식 시장의 경향이다. 초밥 오마카세에서 다찌(바 테이블)에 앉아 초밥을 쥐는 요리사의 손놀림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식사의 흥과 기대감이 북돋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개 테이블에 화력원을 두고 눈 앞에서 구워준다.

[사진 이가은(Afro Studio)]

<이해림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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