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전히 #METOO”

2018-03-20 (화) 나 리/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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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미국 병원에선 환자는 고객이다. 환자의 병원 서비스 만족도에 따라 병원 수익인 보험회사와 정부로부터의 돈이 결정된다. 환자의 불만족에 병원비를 못받을 수도 있다. 내가 근무 하던 병원에는 이 사실을 알고 악용하는 환자들이 더러 있었다.

어느 날 백인 40대 남자 환자가 간호사를 불렀다. 담당간호사인 나는 병실로 들어가서 물었다. “What can I do for you?”그러자 그 백인 남자환자는 자기 배와 등이 아프다면서 ‘healing touch’ 인 마사지를 요구했다.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 Sorry. It is not in my job description, if you want I will check with my manager for a massage therapy.”

그러자 환자는 아시안 간호사가 마사지 하지 누가 하냐며 빨리 하라고 소리 질렀다. 명백한 성희롱과 인종차별적인 말이다.


하지만 맞대응 하면 나만 다치는 걸 알기에 그냥 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결국 그 환자는 “You don’t know English.”라는 말을 해대며 이렇게 하면 환자 만족도에 점수를 안 주고 나를 해고당하게 하겠다는 협박을 했다. 그러면 그렇게 하시라고, 원하시면 수간호사를 불러드리겠다고 하곤 방을 나왔다.

미국인 환자들이 툭하면 영어를 물고 늘어지는 건 익숙했지만 이번엔 환자 만족도와 마사지로 성희롱과 협박을 했다. 하지만 직접 싸울 순 없었다.

수간호사에게 상황을 이야기했고 수간호사가 환자에게 가서 간호사는 마사지사가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을 해줬다. 그리고 이 상황을 알게 된 동료간호사들이 와서 한 번씩 힘내라고 등 두들겨주곤 다음날 그 환자를 동료 흑인 간호사에게 배정을 시켰다.

미국에서 아시안 여자로서 간호사 일을 하는 삶은 일본 기모노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게이샤 이미지와 싸우는 삶이다. 항상 말을 잘 들어야 하고 불평을 하지 않고 조용히 복종하는 나비부인 같은 간호사를 기대한다.

하지만 나는 싸움닭을 선택했다. 환자들이 ‘나는 스시를 좋아한다. 옛 여친도 한국 사람이었다.’라는 등의 희롱이 섞인 집적거림과 ‘Can you speak English?’라는 삿대질에 맞싸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미국서 많은 성희롱과 인종차별을 당했는데 (심지어는 살해위협까지) 그게 크게 상처가 안된 건 이런 상황을 예민하게 항상 옆에서 이해해주고 돌봐 준 동료들과 상사 때문인 것 같다.

한국 직장에서도 물론 이런 성희롱이 있었지만 난 다행히 많은 경우, 비껴 나갈 수 있었다. 부모님의 명함이 내 보호막이었음을 지금 이 순간에 깨닫는다.

이런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이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없어질 수가 있을까. 하지만 사회적인 보호막이 있다면, 더 이상 상처가 곪아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체조 선수를 성희롱 해온 의사에 대한 재판을 보면서 그리고 우리 한국에서도 힘들게 METOO를 외친 많은 분들을 보며, 나도 #METOO

<나 리/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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