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 사냐고?

2018-03-16 (금)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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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무엇을 하는 학문인지 묻는 분이 많다. 그 어려운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또는 철학을 하면 밥벌이에 도움이 되는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는 질문으로 대답하는 것이 최선이다.

철학은 원래 질문을 하는 학문이지 대답을 제공하는 학문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철학은 어려운 학문이 아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과 우주에 관해서 ‘왜’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 철학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우주와 자연에 대한 질문은 근대 이후 철학에서 파생되어 나간 자연과학이 철학을 대신하여 최선의 대답을 제공하기 때문에 자연히 철학의 임무는 주로 인간에 관한 질문으로 좁혀지게 되었다.

철학이 관심을 갖는 분야를 간단히 정리하면 크게 세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는 지식(Knowledge)’에 관한 분야이다. 이 분야는 우주의 궁극적 실체와 그 실체에 대한 인간들의 관점을 주로 다루는 분야인데, 일반적으로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이라는 아리송한 말로 알려져 있다. . 형이상학이란 오직 인간의 이성 만으로 이룰 수 있는 학문을 말한다.


물리학의 기본 법칙과 우리의 오관으로 경험 할 수 없는 이 세상 저 편에 존재 한다고 믿는 영적 존재에 관한 종교적인 관심도 여기에 속한다. 형이하학이란 자연과학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의 오관으로 경험 할 수 있는 모든 존재를 소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두 번째로는 ‘윤리와 도덕(Conducts)’에 관한 분야이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 행위와 인간 관계의 정당성, 옳고 그름, 선악의 본질, 가치에 대한 논리적 연구가 이에 속한다. 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사느냐’하는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산다는 것이 그리스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이성적인 삶, 덕을 쌓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그리스인들의 합리적 사상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분야이다.‘왜 사느냐’는 질문은 또한 자신의 삶에 이루려는 목적이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 너 자신을 알라’는 그리스 사람들의 격언은 그 질문에 대한 첫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재능을 찾아내어 최선을 다해 그것을 개발 성취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그 것이 바로 삶의 목적이라는 암시가 들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세상에 사는 목적은 ‘잘 사는 삶’을 살기 위해 힘써 노력하라는 뜻일 것 이다.

세 번째는‘통치(Governance)’즉 정치와 법에 관한 연구인데, 인간들이 어떤 삶의 환경 속에서 ‘잘 사는 삶’을 살 수 있는가를 탐구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정치란 인간이 ‘잘 살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마련하고 그 것을 법치를 통해 유지하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따라서 정의, 평등, 자유 등의 문제가 항상 정치의 초점이 되어 왔다. 어떤 형태의 정부가 이런 정치의 이상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지를 지난 백오십년간 가장 열심히 실험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고 한다.

철학이 바로 밥을 먹여주는 학문은 아닐 것이다. 컴퓨터나 목공을 배우는 것이 그런 점에서는 훨씬 실용적일 수 있다. 철학은 그런 면에서 비생산적인 분야일 수 있으나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과 그 의미와 방향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을 추구 한다는 점에서 보면 가장 근본적고 또 가장 중요한 학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이다. 철학을 모든 학문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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