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리할 시간

2018-03-16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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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주 작은 수술을 하러 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잠깐 마취를 한다길래 혹여 안깨어나면 어쩌나 싶어 급한 대로 채 마무리 못한 일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세금보고를 아직 못했길래 부랴사랴 서류 정리를 했고 일년에 한번 추첨하는 주차장 신청서류를 준비하여 관리사무실에 일찌감치 갖다 주었고 차 키, 집 키, 은행서류와 체크 북 등을 사이드 테이블에 나란히 두었다.

최근에 신세진 분들을 무리하게 일정을 잡아 선물을 해드리고 저녁을 대접했다. 시간이 안맞는 분은 안부 전화 한통이라도 했다. 옷과 책들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만 정리하고 병원에 다녀온 다음날, 딸아이에게 “이렇게 해둔 것 알았니?” 하자 피식 웃는다.

그 얼마 후, 친척오빠의 일주기가 되었다. 의사로 시인으로 평생을 바쁘게 살다가 병명을 안 지 3주 만에 별세한 오빠는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지난 토요일 저녁 윤동주문학회가 ‘시인 이병기’의 추모회를 연다고 하여 워싱턴으로 기차를 타고 갔다. 버지니아 우래옥에서 열린 ‘가신님들을 위한 추모의 밤’ 행사장에 들어서자 회원들이 얼굴만 보고도 “오빠와 웃는 모습이 똑같네요.” 하면서 반겨주었다.
문학회에 연세 든 분이 많다보니 작년 한해 회원 3명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분들을 추모하는 자리다. 3월16일 작고한 시인 이병기 순서에서 약력이 소개되고 유고시와 추모시를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낭독했다. 각자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이 세상에서 천사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사내, 은천 이병기”, “워싱턴 이민사회에서 그동안 치러진 장례식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장례식장에서 알아본다더니...”, ”아버지같이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다. 두 아버지에 대한 시를 썼다. ”‘

“저녁늦게까지 서류정리하고 시 쓰시고 회원들과 전화하여 문학회 행사를 의논하셨다. 집에 와서도 독거노인 하소연을 새벽2시까지 들어주고 새벽6시부터 일어나 움직이신 분이다”, “우리집 가정의였는데 실버스프링 병원에 약속시간에 가도 늘 기다려야 했다. 환자들이 많아 빨리 진행하시라 하면 나는 의사지, 장사꾼이 아니다 하셨다.”
오빠를 회상하는 순서가 내게도 주어졌다.

“가족사진을 카톡으로 주고받은 지 얼마 후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니 생전의 오빠 생각, 느낌은 2014년 펴낸 미니시집 ‘Silver Spring, 은천리’ 에서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아이들, 손자손녀가 생전의 엄마, 할머니를 추억할 것이 무엇인가 싶었다. 그동안 써온 신문 칼럼을 모아서 민병임칼럼 ‘족발이든 감자든’ 을 출간했다. 오빠 덕분에 책 낼 생각을 했고 오늘 이 자리에도 왔다.”

뉴욕에서 갖고 간 책을 회원들에게 기증했고 오빠를 그리는 칼럼의 일부분을 낭독했다. 이날 테이블 한가운데는 온갖 꽃들과 화분이 놓여있어 식당에서 한 데코레이션인가 했더니 회원들이 준비한 것이란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꽃향기를 맡으며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고 그 분에 대한 추모시를 읽고 감상하면서...그렇게 살아남은 자들이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것이 문학의 본질 아니든가? 내가 옳니 네가 옳니 하지도 않고 내 시가 더 낫다 겨루지도 않고 그저 공감대가 맞음에 기뻐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는 자리, 옛 사진을 보면서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하는 이 자리가 참으로 소중하다, 귀하다 여겨졌다.

동생이라는 이유 하나로 지극한 환대를 받고 뉴욕으로 돌아오면서 그동안 차마 지우지 못했던 오빠의 전화번호와 카톡을 이제는 지워도 되리라 생각했다. 놓아 보내도 되리라 싶었다. 이승을 떠나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 이병기는 이미 하늘의 별이 되었음에....“밤하늘 별을 바라보며 별 헤는 친구들, 모두 윤동주 같은 사람들, 다정하여라.” (최연홍 시)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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