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화예술은 신이 주신 선물

2018-03-09 (금) 송은주/코리아아르츠그룹 예술교육연구소장·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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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나는 어릴 적 언니의 도움으로 운 좋게 집에서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목소리가 예쁘다는 이유로 성악을 공부하게 되어 대학에 입학했다. 그 후에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유학을 했고 성악뿐만 아니라 합창 지휘를 공부했다. 이렇게 배운 시절이 30년에 가깝다. 이렇게 오랜 시절 음악 공부를 하고 활동을 해왔지만 음악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가 느껴진 적은 작년 연말이 내 평생 거의 처음인 듯 싶다.

작년에 우연한 기회로 친족으로 부터 성폭력 당한 아이들 수용시설의 문화예술교육 책임자 직을 맡게 되었다. 한국은 전국에 친족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이 총 4개로 나누어져 있다. 처음 이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마치 커다란 벽을 가운데 두고 있는 것 같았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했고 집중하는 시간은 길어야 15분정도...정말 무반응의 시간들은 20년 가깝게 음악 교육을 해왔던 나에게도 버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이 가여운 아이들의 특징은 경계심 많고, 집중하기 어렵고, 잘 놀라며,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려고 하고, 어떤 활동이든 참여도가 현저히 낮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음악 속에 빠져들고, 즐거워하며 차츰 집중력도 향상 되어 가기 시작했다. 처음 느꼈던 커다란 벽도 조금씩 허물어지며 아이들이 나를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문화예술은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된다. 우울증이나 자신감 결여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거나 자신의 감정을 풀 수 없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화예술은 참으로 훌륭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특히나 음악은 스스로 몸을 움직여 만들어가기 때문에 우울증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좋은 도구이다. 내가 가르쳤던 그 아이들이 집중력이 좋아졌던 것은 음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맘껏 표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음악 수업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불만투성이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왔지만 차츰 하나씩 과제를 완수해 나가며 성취감과 만족감을 통해 자신감이 회복되는 과정 속에서 이 깊은 상처를 지닌 아이들에게도 해맑은 미소가 다시 감돌기 시작했다.

지난 6개월 동안 매주 1000km를 마다하지 않고 전국 팔도를 다니며 아이들을 지도했다. 4개 센터에서 합창, 뮤지컬, 댄스, 타악기 수업을 하며 마지막에는 이 네 파트의 동시 콜라보를 통해 화려한 공연까지 무대에 올렸다. 이 아이들과 같이 한 공연은 지휘하는 나 자신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다.

아이들은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는 두려움으로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 마치 제 집에서 노는 냥 너무나 행복한 모습으로 연주했다. 연주를 마쳤을 때는 우는 아이, 소리를 지르는 아이, 춤을 추는 아이, 정말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모습 그대로였다.

2017년 그 아이들과의 만남은 그저 지식적으로, 학문적으로 공부했던 음악이 현실 세계에서 마음의 깊은 상처 때문에 많이 아픈 이들을 치유하는 좋은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뜻깊은 체험으로 남았다. 그 효과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여서 너무나 행복했다.

문화예술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하며,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늪과 같은 우울함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 해주는 신이 주신 선물이 아닌가 싶다.

<송은주/코리아아르츠그룹 예술교육연구소장·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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