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 떨고 있니?”

2018-03-02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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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29일 서지영 검사의 성추행 피해폭로로 시작된 ‘미투’ (#MeToo•나도 당했다)바람이 한국에 태풍급으로 각계 각 분야에 퍼지고 있다. 원래 작년10월 미국에서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 및 성폭력 고발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영화, 예술계, 정계, 체육계로 광범위하게 퍼졌었다.

한국 내에서는 미투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고은, 이윤택, 오태석, 윤호진, 조민기, 조재현, 오달수, 배병우, 박재동 등등 문화예술계에서 낯익은 인물들의 추악한 모습이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대학가에서 일어난 전•현직 교수의 성추행, 성폭력 고발은 가장 빛나야 할 학창시절을 어둠과 수치의 세계로 유폐 시킨 죄에다 학점을 미끼로 한 수법이 치사하기 짝이 없다.


일부 허위나 과장이 있기도 하겠지만 미투 바람을 보면서 한국은 여전히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이 사회 모든 분야에 만연하구나 하는 실망감이 든다.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나오는 미투를 접하면서 여성들의 성상품화, 노리개화에 화가 나기도 하고 십수년 전 일들을 고발하고 있는 그 마음은, 얼마나 상처가 깊고 힘든 우울증에 시달렸는가 싶어 딱하기도 하다.

일면 ‘그 짓을 당하고도 연극을, 영화를 계속 하고 싶었을까? 정신이 없는, 한마디로 영혼 없는 예술 활동을 하여 지금 그 분야에서 당신은 최고가 되었는가?’ 하는 의문점도 든다.

아직 방송국과 언론계로 미투 바람이 불지 않았지만 조만간 터져 나올 것이다. 오랜 기간 여기자로 활동하면서 회식, 2차 술자리, 노래방 등에서 술과 가무를 통해 친목과 화합을 다져온 문화에 익숙해 있다. 피차 성희롱적 발언을 농담 삼아 했고 별로 마음에 담아두는 사람도 없었고 그저 그 자리에서 한바탕 웃고 마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남자기자들이 “아직, 빵빵해” 하면 자기주장 강한 골드 미스나 드센 아줌마 여기자들은 “밤일은 되고?” 하면서 한술 더 떠서 놀려먹었다.

우리 모두 20대, 30대, 40대 모든 연령마다 남자 때문에, 여자 때문에 힘들었다. 살면서 성(性)으로 인한 무시나 멸시, 성추행 등을 안 겪어본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남자 반 여자 반인데 왜, 여성에게 당한 남성의 ‘미투’는 없는가?

역사적으로 보아 여성의 입지가 강한 적도 없지 않았다. 원시사회는 모계 씨족 부락사회였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마조네스족은 오늘날 시베리아 스키티아 지역에서 여자들끼리만 살던 민족으로 전해진다. 아마조네스는 사내애를 낳으면 죽이거나 버리고 성인이 되면 활쏘기에 지장이 있다 하여 오른쪽 유방을 잘라낸 무척 호전적이고 용감한 여성 전사로 기록된다.

중국 고대신화에도 여자들만 사는 나라에 대한 기록이 여러 곳에 나온다. 산해경(山海經)에는 ‘무함산 북쪽에 여자국이 있다. 남자는 없고 순전히 여자만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東夷傳)에도 여자국의 존재를 전한다.

그렇다면 아이는 어떻게 낳았을까? 산해경에는 ‘황지란 곳이 있는데 부인이 물속에 들어가 목욕하면 곧 임신한다’며 사내애를 낳으면 3세후 바로 죽이고 여자애만 키웠다고 한다. 과거 어느 시절, 여성이 남성이란 존재를 아예 인정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일반적인 통계에 의하면 성희롱 건수 접수 93%가 여성이 당한 것이고 7%가 남성이 당한 것이라는데 그 7% 남성이 고백하는 여성 상급자가 행한 성희롱이나 성폭력, 혹은 매맞는 남자, 남성의 미투 바람....이런 일들이 과연 한국사회에서 일어날까?

뉴욕주에서도 성범죄 예방 교육을 비롯 성희롱이나 성범죄 묵인 풍토에 대한 인식변화가 일어나고 있다지만 이런 일은 자기 앞가림을 자기가 먼저 해야 한다. 더불어 피해자와 목격자의 고발, 업주의 신속한 조치도 따라주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 어느 구석에선가 미투 바람 앞에 “나, 떨고 있니?” 하는 남녀불문 가해자들이 없잖아 있을 것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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