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위대한 영적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2018-02-24 (토) 전춘희/성악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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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한국의 평창 동계올림픽이 톱뉴스로 등장하니 반갑고 어느 때보다 뿌듯하기도 하다. 한국 여자 스케이팅 팀 금메달에 이어 남자팀의 은메달소식에 한창 기쁨을 나누는 순간,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가 소천 하였다는 스페셜 뉴스가 뜬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야 말로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전도자요 전세계 최고 믿음의 영적 목사이다. 나 역시 오늘날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을 갖게 된 것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영향이 크다.

나는 유교사상이 뿌리내린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는 집안 몰래 교회를 다녔다. 다행히 중.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도 미션스쿨에 다녔기에 자연히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다.


1973년 여의도광장에서 유명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오셔서 김장환 목사의 통역으로 대 부흥 성회를 했다. 당시 여의도 광장은 시 벌판으로 척박했지만 그래도 100만이 넘는 인파들이 모여 크게 놀랐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도 생애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곳도 한국이고 오늘날까지 어느 곳에서도 그 기록을 깨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사실 나는 그 집회 얼마 전 원인모를 눈 밑에 혹이 생겨 조금씩 크기 시작하여 한쪽 눈을 덮어 눈과 주위 전체를 제거해야 한다는 의사의 청천병력같은 진단을 받고 절망 상태였다. 간절한 마음으로 빌리 그레이엄 부흥집회를 찾아 특별기도를 받았다. 수십년이 지났지만 나 자신과 온 세상이 터질 것 같고 용광로같이 뜨거운 기도를 체험 하게 되었다. 그후 며칠간 금식 기도 이후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끔히 고침을 받았다.

나는 영락교회에서 한경직 목사의 말씀을 들으며 찬양을 하면서 자랐다. 나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하면 한경직 목사가 늘 떠오른다. 우리는 빌리 그레이엄이 1973년에 한국을 처음 찾은 것으로 아는데 한경직과 빌리 그레이엄 두 믿음의 거목들은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전에도 만났다. 당시 빌리 그레이엄은 전쟁 한가운데 임한 한국에서 부흥전도대회를 가졌다. 그때 50세의 한경직 목사가 34살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통역을 맡으면서 믿음의 동역자가 되었다.

1970년 한경직 목사는 그레이엄에게 “한국교회에 영적인 갈급함이 있는 이때 꼭 와서 부흥집회를 해주십사” 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 결과 1973년 5월30일부터 5일간의 대부흥집회는 근대 한국교회 부흥의 초석을 놓았다. 그레이엄 목사는 또 여러 차례 한국을 내한하여 대집회를 가졌다.

그레이엄은 전 세계의 기독교를 부흥시킨 위대한 인물로 미국 역대 대통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영적 멘토 였다. 그가 생전 믿음의 친구들에게 남긴 말씀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영적 각성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하며 방황하는 것을 보면서 울었습니다. 나는 이 진리를 당신에게 남겨두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과 십자가를 통해서만 용서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 역시 깊이 영적 각성을 하며 앞으로 이 땅에서 주어진 나날을 더욱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다.

<전춘희/성악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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