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제의 인물-사제 서품 조남준 신부
▶ 10년 전 ‘걷기 힘들다’ 판정, 원망·절망 속 “죽고 싶었죠”
조남준 신부는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되는 고난을 딛고 사제 서품을 받았다.
죽음과 같이 고통스러운 고난이 그리스도의 인도였음을 깨닫는 사건들이 있다. 조남준 신부는 지난 12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채 절망에 빠져 절규하던 29살 청년이었다.
카메라 감독으로 일하던 그는 2007년 6월 교통사고를 당한 뒤 목 밑으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당시 조 신부는 골반 일부를 잘라내 부서진 목뼈를 대신하고 핀을 박는 수술을 받았다. 조 신부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걷기는 힘들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매일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원망과 절망으로 점철된 시기를 보냈다”고 회고했다.
그에게 가장 힘이 됐던 것은 자신을 헌신적으로 간호한 어머니의 긍정적인 모습이었다.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던 그에게 어머니는 “마치 네가 갓난아기였을 때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하면서 “이미 일어난 일이고,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자”고 달랬다.
조 신부는 그때부터 상황을 인정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로소 주변이 눈에 들어 왔다. 병상 주변에는 더 큰 고통을 안고 힘들게 살아가는 환자들이 있었다.
조 신부는 “현실의 나를 받아들이고 나서 내가 아닌 이웃을 보는 방법을 깨달았다”며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 가며 이런 깨달음 뒤에 신체적인 변화도 생겼다”고 말했다.
고통스러웠던 재활 치료에 힘입어 그는 사고 한 달여 만에 설 수 있게 됐고 세 달 정도가 지난 뒤에는 스스로 병실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병원의 원목 신부는 “이런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면서 “이건 하느님의 기적”이라며 그에게 성직자의 길을 권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루빨리 몸을 회복해 원래의 일터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였지만 원목 신부의 말은 ‘성소의 씨앗’이 돼 마음속에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2007년 12월 퇴원해 통원 치료를 다니다 이듬해 우연한 기회로 부모님과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그리고 그는 사제가 돼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됐다. 그해 7월 스페인 산티아고로 도보 순례를 떠났다. 800㎞의 순례 길을 완주하면 사제가 되겠다는 것이 그의 결심이었다.
그는 “병석에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무모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익숙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 나를 깊이 있게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도보 순례는 후회가 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딱 들어 맞는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교구 사제가 되려고 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후 도전했던 한 수도회로부터도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에 입회가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다.
두 차례 실패 뒤 과연 이 길이 맞는 것인지 고민하던 그는 수녀였던 동생의 소개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문을 두드렸고 4개월 만에 입회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수도원 생활을 거쳐 사제품을 받은 그는 ‘하느님은 인간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며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준다’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련은 딱 그 사람이 견뎌낼 수 있는 만큼만 주어진다”는 가르침을 강조했다.
“교통사고는 ‘하필 나’에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나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것들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각자의 약한 모습, 모자란 부분을 다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 신부는 많은 사람이 전신마비였던 자신이 두 발로 서서 걷게 된 것을 기적이라고 놀란다면서 “그러나 진짜 기적은 저 같은 죄인이 사제가 됐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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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원 종교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