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교회라니요… 예수님 통치권 훔치는 죄악이죠”

2018-01-25 (목)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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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세습 대담] 충현선교교회 민종기 목사-이혜경 권사

▶ 잘못된 소유 개념 팽배, 한국 600곳서 편법 세습

“내 교회라니요… 예수님 통치권 훔치는 죄악이죠”

교회 세습을 놓고 민종기 목사(오른쪽)와 충현뉴스 편집인 이혜경 권사는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목회자가 호시탐탐 교회 세습을 노리는 경우가 상상 밖으로 많습니다. 교회를 서로 자식에게 맞바꿔 물려주는 교차세습까지 벌어지고 있죠. 세습반대운동본부에 따르면 한국의 서울·인천 지역에서만 중대형 교회 120개에서 세습이 진행 중이거나 완료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소형교회를 포함하면 300곳에 달하고요. 전국적으로는 약 600개 교회에 이를 정도입니다.”

서울 명성교회에서 벌어진 김삼환 목사와 김하나 목사의 부자 세습은 교계는 물론 교회 밖 사회에서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전부터 이어진 대형교회의 담임목사 세습과 물밑에서 소문 없이 이뤄져 온 교회 세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경우이기 때문이다.

글렌데일에 위치한 충현선교교회에서 지난 20일 민종기 담임목사와 성도가 마주 앉아 교회 세습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담론을 나눴다. 민 목사는 마침 ‘목회세습, 하늘의 법정에 세우라’는 신간을 막 내놓은 참이었다. 지난해 안식월 동안 저술한 원고가 명성교회 세습과 맞물리면서 ‘본의 아니게’ 타이밍이 맞아 떨어졌다.


교회 잡지인 충현뉴스 편집인 이혜경 권사는 평신도의 입장을 대표해 교회 세습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애써 키운 비즈니스는 자식에게 물려주는데 유독 교회만 안 된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기업도 편법 상속은 안 되죠. 합법적이면 얼마든지 저도 OK입니다. 교회의 경우는 다릅니다. 교회는 목사 개인의 재산이 아니에요. 그리스도가 소유권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거스르는 것은 죄이고 악입니다. 예수님의 통치권을 훔치는 반역이죠.”

▲교인 투표에서 세습 안건이 통과됐는데, 세습을 금지하는 교단 규정을 강조하는 게 오늘날 시대에 합당할까요?

“목회세습은 교회의 본질에 어긋납니다. 공교회를 훼손하는 죄악이죠. 사실상 교인들이 목회자 방침에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한국교회에 있습니다. 김삼환 목사의 카리스마에도 불구하고 명성교회에서 30% 가까이 반대표가 나왔어요. 반대 의견이 대단하다고 봐야 합니다.”

민 목사는 교회 정치와 공공성이 악화되다보니 신앙의 사사화(私事化)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케이스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앞으로 여러 가지 문제와 겹치면서 결국 교회를 매우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삼환 목사가 세습을 하면서 ‘이건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말씀했어요. 엄청난 왜곡이지요. 목회자가 ‘내 교회를 내가 물려주는데 남이 왜 상관이냐’고 생각합니다. 목회 생태계가 무너지고 한국교회가 전반적으로 타락하는 현상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교인들에게는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고 싶으신가요?

“목회자에게 반대 의견을 전하고 권면해야 합니다. 이것은 목사에게 대드는 차원이 아니라 교회 본질상의 문제이거든요. 실제로 세습한 이후에 사정이 아주 어려워지는 교회가 많습니다. 제가 젊을 때 섬기던 한국 충현교회도 부자 세습 이후 3만 명이던 교인이 6,000명으로 급감했어요. 교회는 세상의 빛과 모범이 돼야죠. 세습은 손가락질 받는 짓입니다.”

▲이번 신간은 읽기는 쉬운데 당사자에게 상처를 덜 주려 애쓴 흔적이 보입니다. 어떤 자세로 읽기를 바라시나요?

“관련자 중에는 잘 아는 분들이 상당수입니다. 김삼환 목사도 우리 교회를 방문해 바로 여기 앉아서 ‘한국교회는 목사의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성도들은 개인을 정죄하거나 목회자를 미워하지 않길 원합니다. ‘나도 그럴 수 있다’는 마음으로 기득권을 주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죠.”

민 목사는 원고를 탈고한 뒤 하나님 앞에서 숙제를 마친 듯 홀가분했다고 말했다. ‘목회세습, 하늘의 법정에 세우라’ 출판기념회는 2월18일 오후 2시30분 충현선교교회에서 열린다.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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