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인슈타인의 고백

2018-01-17 (수) 대니엘 홍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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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칼럼

초등학교 시절 나의 성적은 바닥이었다. 나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배우기 원했지만 군대 훈련관 처럼 행동하는 선생님은 시험을 위해 공부하라 명령했다. 학교에서 내가 가장 싫었던 것은 시험을 통한 경쟁과 스포츠였다. 나는 아무런 가치없는 학생으로 낙인 찍혔고, 몇몇 선생님은 나에게 학교를 떠나라고 권고했다. 잘못한 것이 없는 내가 학교를 그만 둬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고 항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내 교실에 있다는 자체가 선생님의 위상을 추락시키기 때문이다.”

점수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선생님들 때문에 나의 호기심은 묻혔고, 나는 12살 때 부터 선생님들의 말을 믿지 않고 그들의 권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집에서 혼자 배웠다. 처음에는 삼촌, 나중에는 우리 집에 가끔 식사하러 오는 대학생으로 부터 배웠다. 그 대학생은 내게 물리, 천문학에 관한 책을 주었고 나는 그것을 읽으며 우주와 인간 마음에 관한 궁금증이 생겼고 여러 과학자들이 서로 의견이 다른 이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대학생이 건네 준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을 읽었고 그 이후로 내가 배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그렇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불성실한 태도, 형편없는 기억력으로 미루어 보아 앞으로 이 학생은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할 수 없다”라는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의 예측을 맞추기라도 하듯 아인슈타인은 학교 생활 부적응으로 인해 고등학교를 중퇴 하고, 대학 입시에서는 두번 낙방의 쓴맛을 보고, 박사 학위도 중도에서 포기한 후 이렇다할 직장없이 전전긍긍했다. 이렇듯, 초중고 대학 교육 시스템은 아인슈타인을 낙오자로 전락 시켰지만 무엇이 그로 하여금 훗날 남다른 성취를 이루게 만들었을까.


두 가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아인슈타인의 고백이다. “나는 평생 스스로 배웠다. 술을 즐기는 대신 책을 즐겼다. 만일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둘째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교수를 지내고 물리학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프리먼 다이슨이 내린 평가다. “예술 작품을 여러 각도에서 보듯 과학에서도 여러가지 관점이 있다. 여러 관점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앞서간 관점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라고 피력한 바 있는 다이슨은 아인슈타인이 선생님께 항의하고 학교를 그만두는 반항적 행동에서 그가 훗날 전통적 과학 이론에 반기를 드는 과학자의 모습을 보았다.

무한경쟁의 오늘을 살아가는 초중고 대학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까?” “취업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어떻게 습득할까?”를 질문한다. 그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습득되는 것은 나로서기가 아니라, 시키는 것 잘하기 혹은 남 따라하기 같은 수동형 습관이다. 또한, 학교를 철석같이 믿고 의지하며 학교 과정을 마치면 만족한 직장과 삶이 기다릴 것이라고 여긴다. 그런 믿음과 인내는 “오늘 나는 왜 학교에 가야하나?”를 질문하기 보다, “졸업하면 어떤 회사에 취업할까? 돈 벌기 시작하면 뭘하며 즐길까?”라는 미래 지향적인 꿈에 젖게 만든다. 마치 로또에 당첨되면 뭘할까 라는 공상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 처럼.

아인슈타인의 고백과 다이슨의 평가는 학교 울타리 안에 안주하려는 학생들에게 성취의 팁을 주고있다. 곧, 평생 배움과 반항이다. 초중고 대학을 16년 동안 다녀서 얻은 지식과 기술로 나머지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시절은 오래 전에 지났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기술과 지식의 유효기간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대니엘 홍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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