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금빛 거품의 유혹, 샴페인 ‘펑펑’터트리지 말고 ‘살살’깨워 주세요

2018-01-03 (수) 이해림 객원기자 사진 강태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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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시기 적정한 온도는 섭씨 4~10도, 거품은 병이 아닌 글라스서 나와야

▶ 잔은 얇고 기포는 작을수록 좋아, 스파클링 와인 통칭하는 샴페인


샴페인은 터트려선 안 된다.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거대한 배의 선수상에 귀한 샴페인을 깨는 대항해시대의 모습, 또는 어마어마한 상금과 명예가 약속된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했을 때 선수에게 고가의 샴페인을 뿌리는 모습에 현혹되어선 안 된다.

모두 과장된 제스처였거나, 샴페인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중대한 축원 또는 그만큼 큰 경사의 의미에 합당할 때뿐이었다. 우린 고작 장삼이사로서 또 한 해를 맞고 있을 뿐이니 별 일 없이 터트릴 거라면 제과점에서 파는 초저가 ‘뽀글이’로도 똑 같은 연출이 가능하며, 기분은 충분히 난다.

감히 코르크 마개를 열기 전에 충분히 식혀 금빛 액체 속 탄산이 용틀임하는 온도보다 낮은 온도에 진입해야 함은 물론이다. 샴페인 마시기엔 낮으면 4℃, 높으면 10℃가 적당하다. 비싸고 잘 만든 샴페인일수록 10℃ 가까운 온도에서 향이 피어오르게 하는 것이 적당하지만, 4℃ 정도로 차가운 것도 탄산의 청량함을 즐기기에 딱 좋다. 갓 코르크를 연 샴페인 병에서 나와야 할 것은 오로지 그토록 서늘한 한기뿐이다.


두터운 코르크 마개는 ‘퐁’ 하는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레 연다. 손 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코르크 마개가 조금씩 들려 뽑히게 하는 것이다. 손아귀 사이로 찬 바람이 빠져 나오는 것이 미세하게 느껴진다면 알맞은 신중함이다. 샴페인 병을 열었을 때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서는 안 된다. 흐르는 술이 아깝다.

잔은 얇을수록 좋다. 거품은 병이 아니라 글래스에서 나야 한다. 투명하게 잘 닦은 샴페인 글래스에 황금빛 액체를 부으면 영광스러운 올 한 해가 가는 것처럼 부드러운 거품이 솟아 올랐다 이내 사그라든다.

기포는 작을수록 좋다. 미세한 구슬 같이 작은 기포가 끊기지 않고 잔을 비울 때까지 고요하게, 그러나 끝없이 피어오른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내자면 샴페인 자체의 힘도 필요하지만 샴페인 잔도 기포를 돕는다. 고급 샴페인잔 바닥에는 미세한 스크래치가 나 있어 기포가 지속적으로 올라오도록 돕는다.

글래스 모양은 물론 늘씬한, 익히 아는 형태의 플루트 글래스가 대세다. 샴페인의 화려함이 가장 돋보이는 형태다. 그러나 꼭 플루트 글래스에만 샴페인이 맞는다는 법도 없다. 좋은 샴페인의 향은 다채롭다. 향을 가두는 것은 글래스의 형태다. 그래서 요즘은 샴페인 와인 글래스를 따로 쓰기도 한다. 화이트 와인 글래스와 비슷한 모양이다. 글래스의 아랫 부분이 물주머니처럼 불룩하고 입에 닿는 림 부분은 좁은 구조다. 물리적으로 샴페인이 가진 향을 머금고 있다가 코로 바로 불어 넣어 준다.

얇은 유리잔 속에서 황금빛 작은 비즈들이 잔잔하게 피어 오를 때, 비로소 한 해가 간다. 사진에 사용된 빈티지 샴페인 글래스와 디캔터는 ‘블랙타이 빈티지 샴페인 글래스’와 리델 ‘아마데오 디캔터’.

빈티지 샴페인 글래스로 통칭되는 글래스는 옛날 영화에서 보던 것 그대로다. 이 글래스는 플루트 글래스의 허리춤이 중년 남성의 뱃살처럼 불룩하게 나와 있는 형태다. 옛날 영화에 흔하게 나온 샴페인 글래스는 ‘쿠프(Coupe)’ 라는 형태다. 요즘도 영화에서 화려한 파티 장면을 연출할 때 즐겨 쓰는 소품이기도 하다. 흥 나는 영화 ‘라라랜드’에서도,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개츠비 역을 맡아 리메이크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파티에 초대된 이들은 모두 이 쿠프 글래스에 샴페인을 마셨다. 활짝 열린 잔의 형태 덕분에 탄산이 금세 날아가 빨리 마셔야 하니, 흥청망청 파티에는 되레 더 제격인 글래스다.

샴페인이 아니어도 좋다. 발포 와인을 통칭하는 샴페인은 어디까지나 지명이다. 프랑스 북부, 와인의 북방 한계선 부근 지역인 샹파뉴(Champagne)를 영어식으로 읽어 ‘샴페인’이 됐다. 원칙적으로는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특유의 방식으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만 샴페인이라 부른다. 라벨에 ‘샹파뉴 CHAMPAGNE’라고 눈에 띄게 쓰여 있어 구분하기 쉽다. 보통 영어식으로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하는 발포 와인의 일종이 샴페인인 셈인데, 프랑스 다른 지역에서 난 스파클링 와인은 ‘뱅 무셰(Vin Mousseux)’ 또는 ‘크레망(Cremant)’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탄산을 틀어 막는 병의 형태는 샴페인이나 여타 스파클링 와인이나 모두 같다.

‘카바(Cava)’와 ‘스푸만테(Spumante)’ 역시 샴페인 못지 않은 대표성을 띄는 스파클링 와인의 별칭이다. 각각 스페인, 이탈리아의 스파클링 와인이다.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 중엔 ‘프로세코(Prosecco)’도 있다. 인접한 나라, 독일에도 물론 스파클링 와인이 있다. ‘젝트(Sekt)’라고 부른다.

샴페인 또는 스파클링 와인 중에서 황금빛이 아닌 ‘분홍분홍’한 색을 띄는 것들도 있다. 양조 과정 중 포도 껍질을 접촉시키거나 레드 와인을 첨가해 색을 내고 색다른 향을 자아낸다. ‘로제 ROSE’라는 말이 큼직하게 적혀 있어 이 역시 구분하기 어렵지 않다.

샴페인이어도 좋고, 아무 스파클링 와인이어도 좋다. 설사 아무 뽀글이라 한들 뭐 어떤가. 상큼하면서도 싱그럽고, 쌉싸래하다가도 달콤한 여운마저 조금 갖고 있는 스파클링 와인은 한 해를 보내는 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이다. 크리스마스 지나면 곧 2018년, 빛나는 연말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이해림 객원기자 사진 강태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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