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애를 가진 게 죄인가

2017-09-15 (금) 12:00:00 이원진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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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를 당하거나 납치를 당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면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잘못했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제발 목숨만 살려 주세요’ 하며 손발이 닳도록 무릎을 꿇고 빈다고 한다.

일면식도 없는 흉측한 가해자 앞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용서를 빌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소중한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 같은 간절함에 눈물로 그렇게 호소를 한다고 한다.

바로 얼마 전 서울 어느 동네에서는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자녀가 조금이나마 편히 다닐 수 있는 장애인 전용 학교를 세울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며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무릎 꿇고 눈물로 호소하는 장면이 SNS를 통해 전해졌다.


장애인 학교를 건설하고자 하는 측과 이를 강력히 반대하는 주민들 간에 오랜 기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서로 간의 의견을 나누어 보자는 취지의 주민 토론회가 열렸고 이 토론회 장면을 담은 영상이 그대로 SNS를 통해 방송이 되었는데, 이를 지켜보며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에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론회 첫머리부터 아예 반대파 주민들은 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의 애 끓는 호소를 막말과 큰소리로 묵살해 버리려 했다. 장애 자녀를 둔 것이 죄라도 된다는 건지, 자녀가 장애인이면 부모로서 자식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조차 내면 안 된다는 건지 너무도 당연히 죄인 취급하는 반대파 주민들의 큰 소리에 자신들의 입장을 얘기하려는 장애인 부모들의 노력은 시초부터 가능하지가 않아 보였다.

도무지 얘기를 들을 생각이 없는 반대파 주민들을 향해 ‘때리시면 맞겠습니다’ ‘돌을 던지시면 맞겠습니다’ ‘그저 저희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짓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 눈물로 호소하는 엄마들이 결국에는 무릎을 꿇기 까지 했지만, 반대쪽 사람들은 ‘쇼 하지 마라!’ ‘절대 안 된다!’ 며 이 마저 묵살해 버리고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결사적으로 장애인 학교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는 동네에 장애인 학교가 세워지면 집값이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니 할 말을 잃게 된다.

장애인 부모들을 향해 언성을 높이고 삿대질을 하는 그들도 분명 자식을 둔 부모들일 텐데, 그러잖아도 장애를 안고 태어난 자녀를 키우며 평생 가슴에 멍이 들대로 든 부모들에게 집값 떨어진다며 바위 덩어리 같은 돌을 던지는 그들의 심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다.

도대체 언제부터, 어디에서부터 한국이 이렇게 되어 버린 건지,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잔인할 정도로 이기적이고 차갑게 만들어 버린 건지 알 길이 없다. 장애아 부모들이 왜 이 잔인하고 이기적인 이들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지, 무엇을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지 반대하는 그들에게 물어 보고 싶은 심정이다.

자식을 둔 부모라면, 자녀들에게 남을 배려하고, 특히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고 감싸 주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게 당연할 텐데, 과연 이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에게는 무엇을 가르치고, 자신들의 행동들에 대해 뭐라고 변명할지 궁금하다. 아무리 백번, 천번 양보하고 다시 돌아보아도 너무 못되고 나쁘다.

목소리 높여 장애학생들 학교 못 짓게 해서 땅값이 오르고 집값이 올라 얼마나 더 잘 살게 될지 두고 보자는 마음까지 든다. 무엇보다도 장애 자녀를 둔 이 세상의 부모들이 이 황당한 일을 지켜보며, 마치 자신들도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다니지 않을까, 장애를 가진 어린아이들의 마음속이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상처로 가득 차지 않을까 걱정되고, 너무 속상하다.

<이원진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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