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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역사신학적 조명 (4)

2017-07-20 (목) 김홍기 박사/전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 현 오이코스대학교 대학원장 및 이스트 베이 평생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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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장 사도들의 기적적인 석방과 성령의 재 충만

4장1-4절에 성전을 지키는 경찰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함으로 베드로의1-4절: 성전을 지키는 경찰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함으로 베드로의 설교가 중단되었다. 성전경찰의 우두머리는 대제사장의 아주 가까운 심복이다.

예수를 체포하고 십자가 처형을 시켰던 똑같은 사두개파 대제사장 성전경찰들이었다. 5-10절에 그 당시 이스라엘의 대법원은 산헤드린인데 70명으로 구성되었고, 대제사장이 의장이었다. 대제사장까지 포함하면 71명이 된다. 예수님도 재판을 받은 똑같은 법정이었다. 막13:9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똑같이 서게 될 것을 미리 예언하였다.

4장 13절-14절에서 예수님이 배운 일이 없는 무식한 사람으로 알았는데(요7: 15), 그 지혜 있음과 구약 인용에 매우 놀란 것처럼, 무식한 갈릴리 어부들 베드로와 요한에 대하여서도 매우 놀란 것이다. 특히 구약을 인용하면서 외치는 설교를 듣고 놀란 것이다. 구약 율법을 해석하는 사람을 lawyer라고 하고, 그 반대로 율법을 잘 해석할 줄 모르는 사람을 아마추어 혹은 문외한을 layman이라고 말하는데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layman으로 알았는데 lawyer처럼, 유식한 철학자 Socrates처럼 담대하게(희랍어parresian) 말해서 산헤드린이 모두 놀랐다는 것이다. ( Socrates도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을 순종해야 한다고 베드로 처럼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들이 철학자처럼 유식하게 말했다고 주석가 들은 해석한다. “학문 없는 무식한 사람”이 희랍어로 “agrammatos”로 율법의 교육을 전혀 못 받은 사람, 문법도 모르는 사람, 개화되지 못한 사람(uncultivated), 매너 없는 사람(mannerless), 문화적이지 못한 사람(uncultured person)이란 뜻인데, 성령의 은사로 변화를 받아 담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4장 15-17절에 베드로와 요한은 법적으로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고, 그들은 영웅이 되었기에 함부로 다룰 수 없었다. 그리고 고침을 받은 앉은뱅이가 증인으로 그 법정에 함께 와 있었기에 치유의 기적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벌을 줄 수가 없었다. 그들은 경고하고(warning), 그들을 방면할 수 밖에 없었다.

옛날이나 지금도 벌 줄 것이 없으면 경고로 그친다. 복음전도의 길에는 많은 사탄의 시련과 방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궁극적 최종 승리를 아무도 막을 수 없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은 사실을 그 치유 받은 증인이 서있는 현장 앞에서 아무도 부인할 수 없었다.

4장 31절에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그들은 다시 성령으로 충만하게 기름부음을 받는 은총을 체험하였다. 그들이 기도한 후에 지진과 같이 진동이 일어나면서 성령충만을 받았다. 땅과 건물의 지진 같은 진동은 흔히 하나님의 임재로 이해되었다.

퀘이커파(Quaker) 청교도 운동도 성령이 지진처럼(quaking) 임재 하는 체험을 사모하는 종파였다. 쉐이커파(Shaker)파는 미국에서 일어난 영성 운동 인데 성령이 죄를 떨어뜨리는 흔들림(shaking)으로 임한다고 생각하였다.

칼빈도 그의 책 [기독교강요]에서 성령이 활기차게 살리는 운동으로 임한다고 하여 ‘살림’(quickening)으로 표현하였다. 성령충만은 2장에서 오순절사건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다. 한번 거듭난 성도도 성화의 진보를 위해서 계속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 <계속>

<김홍기 박사/전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 현 오이코스대학교 대학원장 및 이스트 베이 평생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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