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우리가 기대하는 데로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은 반드시 내가 원하는데로 진행되지 않는다. 때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 (실패) 이 맑은 하늘에 소낙비 내리듯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그러면 당황스럽고 혼돈스럽다. 탈출구를 찾지 못해 절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고통이 오히려 기쁨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지난 6월 28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그의 첫 방문지가 버지니아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였다. 의외였지만 의미있는 방문이었다. 아니 한미 혈맹을 역사적으로 기억하고 또 새롭게 다져가기 위한 첫 방문지로는 최적으로 보였다. 마치 갈등관계의 형제가 아버지 기일에 만나 과거를 추억하며 화해하는 모습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장진호 전투는 6.25 가 터진 해 겨울 함경도 개마고원 장진호수 인근에서 벌어진 UN 연합군과 중공군과의 전투다.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연합군은 승기를 잡는다. 평양탈환은 물론 북한을 완전 접수하기 위해 북진한다. 하지만 정보에 착오가 있었다. 중공군의 개입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당시 중공군은 장진호 인근에 매복해 있었고 연합군은 그것을 모르고 진군하다가 포위되어 전멸 위기에 빠진다.
결국 연합군은 후퇴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성공적 후퇴였다.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중공군에게도 궤멸적 타격을 입혔기 때문이다. 이후 연합군은 중공군의 공격을 뒤로한 체 흥남에서 민간인 10만명과 더불어 탈출에 성공한다. 영화 국제시장 의 배경이 되는 빅토리아호의 기적도 장진호 전투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묘하게도 당시 빅토리아호에는 문재인 대통령 부모도 승선했었고 2년 후 문 대통령이 거제도 피난수용소에서 태어난다.
우리 인생은 언제 어떻게 바뀔 지 모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삶의 구체적 진행사항을 미리 알려 주시지 않는다. 내일 일을 미리 알수 있다면 이 세상에 성공하지 못할 사람 누가 있겠는가. 그 한계성 때문에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고통에 속수무책 당하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이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절감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절대적 이유다.
장진호 전투는 후퇴이기에 실패처럼 보인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보인다. 그 후퇴로 20만명이 살아났고 65년 이후 그 피난민 중에는 대통령을 포함하여 각계 각층에서 위대한 지도자들이 배출되었다. 그러고 보면 필자 역시 흥남이 고향인 피난민 부모의 후손이라 장진호 전투의 혜택을 입은 셈이다.
당시 빅토리아호 선장은 승무원 46명이 전부인 배로 14,000명을 구출한 것은 기적이라며 하나님의 손길 (섭리) 때문에 가능했다고 회상한다. 그래서인지 그 선장은 이후 기독교 수사가 되어 평생을 생명을 구하는 일에 헌신했다고 한다. 성경에는 실패처럼 보이나 결국에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사건들이 많이 등장한다.
요셉은 형들의 질투에 의해 이집트 노예로 팔려갔으나 결국 이집트 총리가 되어 용서와 함께 온 가족을 구원한다. 모세는 살인 죄로 인해 광야로 도망갔으나 결국 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이끈다. 바울은 기독교 최고의 박해자로 설쳐대다가 한순간 시력을 잃고 꼬꾸라진다. 하지만 그로 인해 기독교 최고의 사도가 된다. 모두가 당시에는 실패처럼 보였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손길로 인해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사용된 경우다.
문대통령의 장진호 전투 기념관 방문은 역사 기억이다. 기억 만큼 정체 인식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기억상실증 환자에게서 정체확인이 불가하듯이, 역사적 사실 거부는 정체성 거부와도 같기 때문이다. 부디 장진호 전투 방문이 한미혈맹의 역사를 되새김질 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나아가 남북은 물론 지구촌의 고통받는 수 많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기여하기를 소망한다. 인생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에 달려 있음을 의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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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철 목사 칼럼/ 천성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