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4년 출간‘비텐베르크 성가집’개신교 첫 찬양집
▶ 권주가 고쳐 쉽게 확산… 종교탄압 신앙으로 승화
‘음악가’ 마틴 루터는 일반적으로 생소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서 각종 행사가 줄을 잇는 가운데 그의 음악과 종교개혁 사이의 긴밀한 상관 관계가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루터는 음악을 종교개혁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했으며 교회음악 자체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유럽의 성지 탐방에 나선 미주 한인들.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는 얼마 전 ‘마틴 루터의 교회음악이 종교개혁과 개신교에 미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열었다. 신학자가 아닌 음악인으로서 루터를 조명하면서 일반인에게는 낯선 다채로운 사실을 알기 쉽게 풀어나갔다.
마틴 루터는 1517년 면죄부의 타당성에 대한 95개 조항의 질의서를 교황청에 제시하며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후 1524년에는 23곡이 담긴 비텐베르크 성가집을 출간했는데 개신교 최초의 찬양집이 됐다. 그는 모두 4권의 성가집을 발간했고 여기에는 37곡이 담겨 있었다. 이 중 9곡은 루터가 작곡한 순수창작곡이었으며 나머지는 다시 번역하거나 라틴어 찬송을 수정한 작품이었다.
“유명한 찬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루터의 대표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루터는 직접 작사한 뒤 당시 유행하던 권주가를 약간 고쳐 이곡을 만들었죠. 권주가가 성가가 된 것인데요, 덕분에 대중 사이에서 급속히 퍼져 나갔습니다. 종교개혁이 확산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친구와 동지들이 화형을 당할 때마다 곡을 썼다. 그를 괴롭히는 분노와 울분은 성가를 통해 강렬한 종교개혁의 의지와 열정으로 승화됐다.
“사실 루터의 설교보다 그의 음악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 장터, 길거리, 벌판에서 루터의 성가곡들이 울려 퍼졌거든요. 또 루터는 개혁적이고 복음적인 가사를 유행가 대중음악에 얹혀서 교회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실제로 ‘복음을 노래한 이후로 적들이 복음의 능력을 무시하지 못하게 됐다’고 루터 스스로 평가했을 정도로 그의 교회음악은 개혁의 강력한 무기였다. 그는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 찬송을 만들고, 소수의 성가대가 아닌 모두가 부를 수 있는 회중 찬송을 창시했다.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루터는 교회음악이 은혜를 받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찬송은 인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여야만 한다는 것이었죠. 작곡을 먼저하고 가사를 쓰지 않고, 반대로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우선 작사한 뒤 나중에 곡을 입혔습니다.”
루터는 음악을 위한 찬송이 아니라, 찬송을 위한 음악이라는 교회음악의 본질을 회복시켰다.
윤 교수는 “루터를 빼고는 개신교 음악사를 말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지금 교회에서 불리는 코럴, 칸타타, 오라토리오, 성가대 찬송이 모두 그의 공헌 덕분에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교회음악으로 명성을 떨친 “헨델이나 바하도 루터가 피와 땀으로 개척한 길 위에서 꽃을 피웠다”고 윤 교수는 덧붙였다.
“모든 음악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찬송가 뿐 아니라 대중가요도 복음을 전하는 훌륭한 수단이라는 점을 루터는 보여줬죠. 중장년층에게 뽕짝 곡조의 찬양이 더 다가갈 수 있고, 힙합 찬양이 청년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거죠.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언어일 뿐입니다.”
윤 교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본질은 어떤 상황에서도 고수하되, 시대적 문화 상황과 회중의 음악 성향을 파악해 교회음악을 선별하는 지혜를 루터의 개혁에서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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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원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