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지방 함량 높을 수록 공기양 적을수록 고급
▶ 유지방이나 설탕 과하면 질척거리며 맛 없어
혀 위에서 점차 체온에 가까워지며 부드럽게 녹으면 온도에 숨겨졌던 달콤하고 풍부한 맛이 흠뻑 터져 나온다. 여전히 차가운 기운을 가진 액체는 식도를 타고 몸 속까지 식히며 깊숙이 내려가 버리고 혀 위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바로 아이스크림이다. 아이스크림의 계절이 다가온다. 언제 먹어도 달콤하지만 남가주의 찌는 듯한 폭염을 녹이는데 아이스크림은 차가운 물 한 잔이 줄 수 없는 쾌락을 준다. 처음엔 차갑게 입 안을 채우며 온 몸에 한기를 전달하고 더위에 절어 무기력해진 온 몸을 시원하게 깨운다. 아이스크림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신선한 재료와 유지방, 설탕 함량은 물론 공기의 양 조차도 미세한 맛의 차이를 주는 것이 아이스크림이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의 이모저모에 대해 알아보자.
▶미국인의 아이스크림 사랑
미국인들의 아이스크림 사랑은 예전부터 남달랐다. 과학자 해롤드 맥기의 저서 ‘음식과 요리’에 따르면 1900년 미국을 방문한 한 영국인이 오죽하면 미국인들이 엄청난 양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보고 받은 충격을 비사로 기록해두었을까. 한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인들은 1인당 20리터씩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마켓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사이즈도 파인트(473㎖) 사이즈가 아니라 호탕한 쿼트(946㎖) 사이즈다.
아이스크림에 있어 미국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단지 양 때문만이 아니다. 아이스크림을 고급스러운 디저트로 꽃 피운 것은 유럽이지만 그것을 대중화하고 산업화한 것은 미국이다.
19세기 필라델피아와 볼티모어에서 아이스크림 제조 기술의 대격변이 일어났고 두 도시의 공헌으로 현재 대량생산 되는 아이스크림이 고른 질감을 가진 산업화된 제품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 특유의 매끈함은 물론 대량생산에 걸맞은 보관성을 갖기 위해 신 제조공법 개발에 열을 올린 덕택이다. 또 자연재료부터 합성재료까지 기발한 재료들도 다양하게 첨가하는 기술도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약국체인 라이트 에이드의 유명 아이스크림인 쓰리프티 코너.
▶아이스크림의 기본 재료
아이스크림의 가장 기본 구성요소는 우유(혹은 크림)와 설탕, 공기다. 우유나 크림의 지방은 아이스크림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수분 사이사이에 파고들어 얼음 결정이 커지는 것을 방해한다. 당연히 아이스크림 안에는 물과 지방이 공존한다.
섞이지 않는 두 성질을 하나로 섞이게 하는 것이 유화제다. 달걀노른자가 대표적인 아이스크림의 유화제이자 안정제다. 노른자 속의 단백질인 레시틴이 이 작용을 한다. 대량생산 아이스크림에서는 대두 레시틴, 모노&디글리세라이드, 폴리소르베이트 등을 첨가해 사용하기도 한다.
설탕은 단맛을 내는 역할도 하지만 수분의 일부를 슬러시처럼 바꿔놓아 아이스크림을 속에서부터 냉각시킨다. 물론 주된 냉각원은 아이스크림 혼합물을 둘러싼 통 밖의 냉매다. 고전적으로는 소금을 뿌려 녹는점이 낮아진 얼음이 그 역할을 했다. 혼합물 안에서 슬러시가 되지 않은 수분은 설탕이 녹아 빙점이 낮은 시럽 형태로 아이스크림 속에 섞인다. 공기는 아이스크림을 냉각기 안에서 휘저을 때 들어가는데, 빨리 휘저어 아이스크림 안의 공기가 많을수록 가볍게 녹는다. 보관할 때의 온도도 중요한데, 온도가 낮을수록 아이스크림은 딱딱해지고 높으면 부드럽다.
▶아이스크림의 종류
아이스크림은 크게 나눠 프리미엄부터 레귤러, 이코노미까지 다양한 등급이 있는데 그 등급 사이에는 재료와 제조법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미국 아이스크림의 표준적인 맛이라고 한다면 크림 자체의 농후함이 강조되는 필라델피아식 아이스크림을 말한다.
수퍼 프리미엄 등급이라면 유지방이 15~18%, 프리미엄 등급은 11~15% 함유돼 있으며 등급이 내려갈수록 유지방 함량이 낮아지며 이코노미 등급의 경우 10%정도라고 보면 된다.
아이스크림 등급의 경우 ‘오버런’(overrun)도 알아둘 필요가 있는데 오버런은 완성된 아이스크림 부피가 원래의 혼합물보다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는 즉 부피 증가분을 의미한다.
100% 오버런 아이스크림이라면 공기 반, 아이스크림 반이라는 의미가 된다. 오버런이 적을수록 등급이 높은데 수퍼 프리미엄의 오버런은 20%까지도 내려가 거의 공기가 없어 젤라토와 질감이 비슷해진다. 프리미엄은 60~90%, 레귤러는 90~100%, 이코노미는 95~100%다.
상식적으로 공기가 많을수록 아이스크림이 푹신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막걸리로 발효시킨 떡을 생각해 보면 된다. 공기(발효가 일어나며 생긴 구멍)가 많을수록 푹신한 질감은 생기겠지만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형태 유지가 되지 않고 흐트러지거나 부서진다.
한 전문가는 “아이스크림에 공기가 반이라면 싸래기 눈처럼 흩어져버린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오버런 100%의 대량생산의 경우 흩어지는 아이스크림을 아이스크림 모양새를 하고 만들기 위해서는 공기를 함유한 상태 그대로 순간적으로 얼릴 필요도 있지만 유통 중 미세하게 해동될 때나 녹으면서 무너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안정제를 더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버런을 위해서는 천연 안정제도 필요한데 주로 젤라틴, 한천, 카라기난, 타피오카전분, 옥수수전분, 글루코오스 시럽, 아라비아검, 구아검, 로커스트콩검, 셀룰로오스검, 타마린드검, 산탄검 등이 사용된다. 이런 재료는 저지방, 무지방 아이스크림일수록 더 많이 필요하다.
▶어떤 아이스크림이 좋을까
아이스크림은 수분이 너무 많아서도 안 되며 설탕이 과하면 질척거린다. 또 유지방이 넘치면 버터가 돼버린다. 이상적인 아이스크림은 60%의 수분, 15%의 설탕, 10~20%의 유지방을 가지며 질감이 고르고 크림 같이 부드러우며 탄탄해서 씹히는 것 같은 농도를 가진다.
아이스크림은 보관법도 중요하다. 냉동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냉동실 온도는 오르락내리락한다. 바깥 온도가 높은 날은 문을 여는 것만으로 아이스크림은 표면이 녹을 수 있다. 다시 어는 과정에서 아이스크림은 참담한 상태가 된다. 녹았다 언 아이스크림은 덜 해동된 메생이 덩어리를 씹는 것 같은 불쾌한 질감이 된다. 얼음 결정에 녹은 물이 달라붙어 결정이 자라난 탓이다. 모든 음식에는 수분이 포함돼있으므로 이 변화는 어떤 냉동식품에서도 해당된다. 편의점 냉동고를 닫은 후 일정 시간이 지나야 열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초 아이스크림 제조과정의 모든 것은 얼음 결정을 작게 하려는 노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과 매력적인 향은 차라리 둘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과하지 않다. 얼음 결정의 수가 많을수록, 그리고 그 각각의 크기가 작을수록 아이스크림은 부드러운 질감으로, 달콤한 쾌락으로 각별히 시원하게 이 여름을 녹인다.
▶아이스크림과 같은 듯 다른 제품
대부분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는 아이스크림뿐 아니라 소르베, 셔벗 등 다양한 종류의 빙과를 만든다. 내고자 하는 맛에 따라 각각의 형태와 제조 방법, 재료 비율을 달리하는 섬세한 레시피가 사용된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경우 일반 아이스크림보다 유지방 함량이 낮고 높은 온도에서 만든다. 오버런이 높아 입술에 닿는 순간 부드럽게 허물어진다.
요즘 인기를 모으는 젤라또는 얼었다는 뜻의 이탈리아어(gelato)로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크림을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며 우유로 만든다. 오버런이 20%가량으로 낮고 당도가 덜한 것이 특징. 보관 온도도 아이스크림에 비해 높다.
프렌치 스타일의 아이스크림인 크렘 글라세(creme glacee)도 있다. 프로즌 커스터드라고도 불리며 달걀노른자로 만든 커스터드가 들어가 특유의 달걀 맛이 난다.
소르베(Sorbet)는 우유를 넣지 않고 과일 퓨레를 잘 휘저어 그대로 얼린다. 유제품을 사용하지 않아 비건용으로 통한다.
셔벗(Sherbet)은 소르베와 같지만 우유가 들어가는 것이 차이며 그라니타(Granita)는 소르베와 비슷하지만 휘젓지 않은 퓨레를 얼리는 동안 긁어내어 얼음 자체의 질감을 살린다. 가정에서 만들어 보기 가장 쉬운 빙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