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들은 펜실베니아, 오하이오, 미시건 등 소위 ‘러스트 벨트’의 중하류 백인 노동자들이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 성향인 이들은 중국과 멕시코 등 인건비가 싼 곳으로 공장 일자리가 이동하면서 지난 수십년간 미국 경제 성장의 덕은커녕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 썼다.
이들에게 중국에게 45%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북미 자유무역 협정(NAFTA)을 폐기하며 멕시코 국경에 “아름다운 장벽”을 세워 그 비용을 멕시코에게 물리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은 달콤했다. 월가 대형회사들에게 강연을 해주고 수십만 달러를 받은 힐러리 클린턴을 ‘기득권층의 수호자’로 몰아부친 트럼프의 공격도 주효했다. 이들은 도널드에게 몰표를 줬고 결과는 가장 자격없는 미국 대통령의 탄생이었다.
취임 100일이 지난 지금 트럼프가 이들을 위해 해준 것은 거의 없다. 취임 첫날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약속은 공염불이 된지 오래고 보복관세 얘기도 쏙 들어갔다. 당장 NAFTA를 없앨 것 같이 하다 부분개정 쪽으로 돌아섰고 국경장벽 예산을 승인해주지 않으면 연방정부 폐쇄를 불사할 것 같이 하다 슬그머니 포기하고 말았다. “모든 국민에게 보다 좋고 값싼 건강보험을 제공하겠다”는 공약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시행되면 2,400만 명의 미국민이 보험을 잃게 될 것으로 추산되는 트럼프케어가 다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공약 위반보다 자기를 지지해 준 사람들에 대한 더 큰 배신은 지난 주 트럼프가 발표한 세제개혁안이다. ‘안’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달랑 한 페이지짜리 이 메모에 따르면 현행 7개인 연방소득세 과표 구간은 3개로 줄어들고 기본 소득공제는 2배로 늘어나며 개인 최고 세율은 39%에서 35%로, 기업들에 부과되는 소득세 최고 세율은 35%에서 15%로 낮아진다. 모기지 이자와 자선단체 기부를 제외한 모든 소득공제는 사라지며 따라서 주 소득세와 재산세 등은 더 이상 소득에세 제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복잡하기 그지 없는 세제를 단순화시키고 세율을 낮춰 경제성장을 촉진시킨다는 경제이론의 취지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개혁안은 여기에다 LLC를 비롯한 개인기업을 통한 소득 최고 세율을 15%로 낮추고 대체 최저세(AMT)를 없애며 상속세를 폐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투자가들이나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은 LLC라는 기업을 만들어 소득을 올리며 여기서 발생한 소득을 개인이 가져간다. 현재는 기업 최고 세율인 35%가 적용되지만 이것이 15%로 낮아지면 이를 통한 개인의 최고 세율도 결국 15%로 낮아지게 되는 셈이다.
AMT는 고소득자가 각종 공제로 세금을 과다하게 축소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로 부자들의 분노를 사온 제도다. 공개된 2005년 트럼프 세금보고 내용을 보면 이 제도가 없었더라면 트럼프는 700만 달러만 세금을 내면 됐다. 그러나 이 조항 때문에 3,100만 달러의 세금을 내야 했다.
현재 상속세는 부부의 경우 1,100만 달러까지는 면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만져볼 수 없는 돈이다. 따라서 현재 미국에서 상속세를 내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0.2%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트럼프 개혁안은 이를 아예 폐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내용의 개혁안이 통과될 경우 최대 수혜자가 누구인지는 자명하다.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세제 혜택의 51%가 상위 1%에 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보는 혜택만 상속세 12억 달러, 연소득세 2,700만 달러 등 천문학적 수준이다.
반면 트럼프를 지지했던 백인 중하류층의 혜택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이들은 원래 내는 세금 액수가 미미했기 때문이다. 이번 감세로 발생하는 재정적자는 향후 10년 간 7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우리 후손들이 고스란히 물어야 할 돈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와 정책에 문외한인 트럼프가 도대체 왜 대선에 출마했을까 의아해왔다. 이번 세제 개혁안으로 분명한 답이 나온 셈이다. 북과 장구 대신 이민자와 불법체류자를 치며 배고픈 곰들을 춤추게 한 후 ‘되놈’은 착실히 돈을 챙겨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열심히 춤추느라 더 허기졌을 곰들의 모습이 참으로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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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