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수적 기독교인 윤리의식 의외로 ‘느슨’

2017-04-19 (수)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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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틀리 앨라배마 주지사 스캔들 계기로 주목

▶ 다른 여성에게 ‘사랑한다’ 문자 보내는 경우 “배우자 속이는 행위” 응답 58%로 일반인과 비슷 “성적인 문자 보냈다면 외도에 해당”75%만 동의

보수적 기독교인 윤리의식 의외로 ‘느슨’

앨라배마 주 로버트 벤틀리 전 주지사가 최근 스캔들로 사임했다.

기독교인의 윤리 의식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성경적 기준이야 불변이지만 이를 따르는‘죄 많은’ 사람에게는 적용과 순종이라는 고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때로는 핵심 가치를 훼손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시대적 환경에 맞춰 순응의 결실을 맺기도 한다.

앨라배마 주의 로버트 벤틀리 주지사의 스캔들이 최근 크리스천의 윤리 의식과 맞물려 논쟁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평소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벤틀리 주지사는 스캔들이 확산되자 지난 10일 사임했다.

이를 두고 정치인의 역량과 도덕적 생활 사이에 잘못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보수적 기독교인의 지지 배경까지 겹치면서 크리스천 윤리 기준의 변화 흐름에 전문가들의 관심도 쏠리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혁명의 시대답게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교제는 어느 수준까지 윤리적이며, 과연 불륜의 범주는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벤틀리 주지사의 스캔들은 그가 보좌관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내용을 비서가 보고 주지사의 아내에게 알리면서 불거졌다.

밴틀리 주지사는 보좌관에게 ‘예뻐 보인다’ 또는 ‘정말 사랑한다’는 등의 메시지를 보냈고 그의 부인은 아이패드에서 이를 확인했다. 보좌관은 벤틀리 주지사가 과거 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쳤던 학생이었다.

이처럼 디지털 기기를 통해 다른 여인에게 고백성 문자를 보내는 경우, 이 역시 외도나 불륜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를 놓고 ‘유가브’(YouGov)와 데저렛뉴스가 공동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크리스티애너티 투데이(CT)가 지난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 전체 중에서는 절반이 ‘배우자를 속이는 행위’라고 동의했다. 보수적인 가치관을 고수하는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58%가 동의했다.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은 셈이다.

더구나 진보적 신앙관을 가진 소위 메인라인(mainline) 교단 기독교인보다도 낮은 수준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루터교 등 메인라인 교단은 동성애, 낙태 등 사회적 이슈에서 대체적으로 허용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번 조사 결과는 주로 남부와 중서부를 중심으로 하는 ‘바이블 벨트’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보수적 복음주의 교인들이 더 느슨한 윤리 기준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더 예상을 깨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조사기관은 명백하게 성적(sexual) 내용을 담은 문자의 경우 배우자를 속이는 불륜에 해당하는 가를 물었다. 이에 대해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중 75%만이 ‘배우자를 속이는 외도’라고 동의했다. 미국인 전체의 69%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수준이다. 또 4명 가운데 1명은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성적인 메시지를 주고 받아도 불륜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좋아하는 이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데이트를 하는 행위는 신앙적이지 않다’는 원칙에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다른 어떤 종교 그룹보다도 더 많은 지지를 보내 왔다. 디지털 메시지를 통한 교제에 대한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관대한 윤리 기준은 이와 상반되는 경향을 나타내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대선에서 드러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보수 기독교인들의 지지 성향도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신앙적인 과거 행적은 선거 기간 내내 논쟁을 일으켰지만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결국 압도적인 표를 몰아줬다.

실제로 ‘정치인의 외도가 문제가 되느냐’는 질문에 지난해에만 해도 ‘괜찮다’는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42%였지만 지금은 53%로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메인라인 교단 기독교인이나 무종교 미국인보다 더 높은 수치여서 보수적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윤리 의식이 급변하고 있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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