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교회를 오래 섬기는’ 목회자가 늘고 있다

2017-04-12 (수)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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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진하듯 더 큰 교회로’ 임지 옮기기 크게 줄어

▶ 교인 많은 큰 교회보다 ‘알찬 목회’ 인식 확산, 은퇴연령도 계속 높아져

‘한 교회를 오래 섬기는’ 목회자가 늘고 있다

이민교회 목회자들이 목회자 세미나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목사가 섬기던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를 섬기는 것을 마치 배신처럼 여기는 풍토가 이민교회 안에 흐르고 있다. 교회는 물론 일반 사회까지 가세해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더구나 목사가 옮겨 가는 교회의 규모가 더 클 경우 비난은 한층 거세진다. 목사 개인의 출세 경로로 교회가 이용돼서는 안 된다. 실제로 교회를 ‘계단’으로 삼아 승진하듯 더 큰 교회를 찾아 밟고 올라가는 철새 목사도 있다. 하지만 목사도 섬기는 교회를 옮길 수 있다. 일부 교단은 아예 일정 기간마다 담임목사의 임지를 변경해 순환 발령하기도 한다. 또 목회자나 교회의 이런 저런 사정에 따라 목사가 새로운 교회로 임지를 옮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어떤 목사는 경험과 경력을 쌓아 대형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 받을 수도 있다. 어차피 누군가는 맡아야 할 자리다. 싸잡아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도 점차 옛 이야기가 되고 있다. 교계 성장세가 전반적으로 둔화되면서 청빙이나 선택의 여지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목사가 한 교회를 섬기는 근속 기간이 이전보다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라이프웨이 리서치에 따르면 한 교회를 오랜 동안 섬기다 은퇴하는 목사가 지난 20년 동안 거의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리저리 교회를 옮기기 보다는 한 교회에서 꾸준히 일하다 은퇴하는 목사가 급증하고 있다. 과거처럼 교회를 옮겨가며 ‘출세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목사도 보기 드물어졌다.


인구가 급증하던 시절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 목회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지금의 교회를 떠나봐야 새로운 임지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에 속한 목사의 은퇴 연령이 계속 높아지는 경향도 목회자가 교회를 쉽게 옮기지 않는 배경이 되고 있다. 평균 연령이 큰 폭으로 높아지면서 목사의 은퇴 나이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와 함께 더 큰 교회가 더 좋은 사역지가 아닐 수 있다는 인식의 확산도 한몫하고 있다. ‘알찬 목회’와 ‘행복한 목회’에 대한 소망이 목회자 사이에서 일반화되고 있다. 교인이 많다는 게 장점일 수 있지만 오히려 교회와 목회가 본질에서 벗어나는 허점으로 작용하는 사례를 충분히 목격하고 있는 탓이다.

게다가 요즘 세상은 단순히 동네 교회 목사만 원하는 게 아니다. 교회와 세상을 잇는 촉매 작용을 감당할 수 있는 목회자를 함께 필요로 하고 있다. 기대와 역할의 변화는 목회자의 비전과 진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교회를 오래 섬기는 목사는 당연히 커뮤니티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다. 목회자로서 필수적 요소이자 강점일 수밖에 없다. 교회를 옮길 경우 새롭게 커뮤니티에 접근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더구나 점점 더 많은 목사가 교회 뿐 아니라 지역사회 환경과 조건을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다. 한 교회에 장기간 머물며 사역하는 것이 목회를 보다 충실하게 꾸려갈 수 있으며 삶에도 유리하다는 사실도 목사들이 절감하고 있다.

재정적인 문제도 사역지를 옮기는 결정에 크게 작용한다. 가뜩이나 넉넉지 않은 형편에 섣불리 교회를 옮겼다가 비용만 치루는 악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녀 교육이나 배우자의 직장 등 가정 사정도 예전처럼 단순하지 않은 상황이다. 새로운 임지를 고려할 때 심각하게 숙고해야 할 사항이고 그만큼 이동하기에 어려워진다. 결국 급변하는 사회와 불확실한 목회 환경 속에서 장기근속을 선택하는 목회자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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