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근혜를 위하여

2017-04-08 (토) 장지윤/전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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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일생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후 실록장편 소설로부터 대화역사 영화로 상당한 베스트 셀러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 극본의 마지막 장이 과연 어떤 것이 될까는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세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1) 구치소 생활 고생 끝에 원망과 분노와 증오의 씨를 더 뿌리고 떠날 박근혜.
2) 아직도 젊은 60대 나이에 정치생명을 되살려 새로운 정치세력의 구축으로 통일 한반도 대통령이 되는 박근혜.
3) 속세의 최고영화를 누렸던 그가 그만큼 깊은 계곡에서의 고난을 통해 인간과 하늘의 길을 새로 배워 촌부와도 같이, 혹은 성녀 ‘마더 테레사’와 같이 평화롭고 기쁘게 사는 길 등이다.

필자는 박근혜가 세 번째 길을 선택하리라 믿는다. 이제까지의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은 앞날의 박근혜를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민족의 새로운 정신역사 창조에 이바지하기 위해 태어난 그는 이제 거듭나는 길. ‘아버지’와 특권의식에서 해방되는 길을 찾을 것이다.


구약의 ‘욥’처럼, 하늘은 한 인간을 귀하게 쓰려 준비시킬 때, 제일 먼저 세속적 영화를 누리게 한다. 인간은 잘 나가면 우쭐 방자해져, 다른 동료 인간을 존경 할 줄 모르고, 종으로 삼거나 ‘시녀’ 취급한다. 이런 오만이 신성모독인줄 모르기 때문에, 또 자기가 자신의 선택으로 자기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인도한 줄 모르고, 그는 하늘을 원망한다.

청와대를 자기 친가처럼 여겼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처참한 죽음, 대통령 아버지의 퍼스트 레이디로 온갖 영화를 누리던 박근혜. 정치계로 용감히 뛰어들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고 또 오늘날 겪는 수치. 이 모든 박근혜의 행로는 ‘아버지’ 덕 이었고 동시에 아버지의 탓 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경제발전이란 명목과 업적의 대가로 유린되었던 인권. 반대하는 많은 사람을 투옥시키고 고문하고 죽인 독재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군주왕권적 행사는, 그것을 행하는 자 보다 이를 용납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더 클 것이다.

어떤 형태의 인간도 그는 신성을 내재하고 태어났기 때문에, 만민이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절대로 좋게나 나쁘게나, 부모를 보고 자식 된 한 인간을 평가하거나 차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을 ‘어명’이라 하고, 40년간 우정을 나눈 지인을 대통령이 ‘시녀’ 운운 하는 의식구조는 본인과 더욱이 일반 대중의 전시대적 관념 착오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는지...

외모와 머리치장, 옷차림에 대한 집념, 평민들과의 악수 거부하기, 변기 뜯어내기 등의 행동은 병적인 결벽증이라 하겠으나, 옥중생활을 통해서 쉽게 치료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어찌되었던 구치소에 연금된 상태의 박근혜 모습이 그의 마지막이 될 수는 없다. 한 인간의 한때의 모습이 그의 모두를 말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삶의 열매가 그녀의 깊은 고뇌와 시련을 통해 욥기에 나오는 욥의 제3의 운명처럼 진정 빛나는 하늘의 별이 되기를 바란다.

<장지윤/전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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