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의 축복

2017-04-06 (목) 김명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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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새로운 시작이다. ‘봄은 고양이로소이다.’하는 이장희 시인의 따뜻한 시가 떠오른다. 특히 이상화 시인의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고 한 시인의 마음이 내 마음에 걸려 아프다. 국토는 빼앗겼으나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봄은 결코 빼앗길 수 없다는 간절한 몸부림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염원이 모여 존립해온 아름다운 나라, 내 모국에도 봄의 축복이 희망처럼 내려질 수 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은 결코 희망을 전하는 봄소식은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 라면서도 마음이 계속 우울해진다. 구치소에서 보낼 그녀의 차가운 봄이 국가적 현실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듯해 몹시 슬퍼진다. 하지만 그녀는 한 여자이기 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기에 측은지심은 접어두기로 한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인간들의 허튼 욕망이 빚어낸 기괴한 그림자에 휘둘리며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 하면서도 모국에 대한 관심이 깊었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쏟아졌던 충격적인 언어들도 뇌리에 박혀 혼란스럽다.


하지만 촛불 시위가 질서있고 평화롭게 진행된 걸 보면,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봄 햇살처럼 쏟아질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신의 ‘좋음’으로부터 생겨났고, 세상의 모든 것은 좋은 것이다.’고 했다. 하지만 물질이 범람하는 인간 세상에는 선한 것만이 존재하는 건 아닌가 보다. 선한 마음을 갖고 태어난 인간이라 할지라도 욕심과 욕망의 허상을 좇다 보면 ‘좋음’의 것들이 암흑속에 삼켜져 버리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 어둠 속을 벗어 나오긴 쉽지 않은 것 같다.

봄의 햇살이 축복처럼 비추는 이 봄날에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아니하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도덕경 말씀이 떠오르는 건 왜 일까. 세상의 모든 물질과 욕망은 허망하고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닌가. 그런 줄 알면서도 쉽게 지족(知足)하기가 쉽지 않아 벌어지는 다툼들.

현재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기대감으로 존재한다. 그 많은 일들이 내 과거 속에 있었고, 나는 그 경험에 의해 형성된 존재다. 이 봄, 나는 스스로에게 “너는 어떤 존재인가? 욕망의 노예는 아닌가?”라고 묻고 들여다보면서 내 모국에, 세상의 곳곳에 봄의 축복이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김명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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