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보 김기창 화백 ‘예수의 생애’ 연작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전에 초청 전시
운보 김기창 화백이 조선시대 퐁속화로 그린‘예수의 생애’ 중‘최후의 만찬’.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운보의 예수’가 베를린으로 갔다. 독일 역사박물관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오는 12일 개막하는‘루터 이펙트’전시회에 초청을 받아 전시될 예정이다.
대표적인 한국화 화백으로 꼽히는 운보 김기창(1914~2001)은 한국전쟁 와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공생애와 부활까지‘예수의 생애’를 연작 30점에 담았다.
한복을 입은 예수와 제자들, 마리아는 저고리 입은 처녀, 예수가 탄생한 마구간은 외양간 등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풍속화에 녹여 우리 민족의 수난과 희망을 표현했다.
운보는 1951년 40세 때 처가가 있는 전북 군산 농촌마을로 피란 가 ‘예수의 생애’를 그렸다. 민족 수난의 가혹한 현실을 예수의 생애에 비유해 조선시대 풍속화로 그린 역작이다. 생전 그는 자서전인 ‘나의 사랑과 예술’에서 ‘예수의 생애’를 그린 배경을 소개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예수의 시체를 안고 지하 무덤으로 내려갔다가 차마 놓고 올라올 수 없어 통곡하다 깨어난 그날로부터 성화를 그리기 시작했다.”당초에는 1년간의 작업 끝에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29점으로 그렸다. 그러다 당시 선교사의 조언에 따라 부활을 추가해 30점이 됐다. 이 작품은 1954년 화신백화점 갤러리에서 첫 선을 보인 뒤 1993년 10월 예술의 전당 운보전에서 다시 등장해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연작은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임신할 것을 예언하는 ‘수태고지’부터 ‘아기예수 탄생’ ‘동방박사 경배’로 이어진다. 운보의 작품 속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조선의 선녀로 바뀌었고 마리아는 노랑저고리에 녹색치마를 입은 처녀로 표현돼 있다. 또 아기 예수가 탄생한 마구간은 외양간으로, 양은 닭으로 그려져 있다. ‘최후의 만찬’에서는 한쪽 탁자에 몰려 앉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과 달리 상을 가운데 두고 선비들이 둘러앉아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
운보는 감리교 교인이었던 어머니 한윤명 여사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다. 그는 미국인 선교사 앤더슨 젠슨과 친분을 쌓았으며 선교사가 성화 제작을 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수는 반드시 서양인이라 할 수 없으며, 육체적인 구체성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신념이라고 선교사는 운보를 설득했다고 한다.
그의 연작은 신앙을 표현하는 간절한 희구같은 것으로 읽을 수 있다고 평론가 서성록은 설명한다. 실제로 운보는 피난 시절의 가난하고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화구도 구하기 힘든 여건이었지만 “모든 일을 전폐하고 오로지 성화를 그리는데 온 힘을 쏟았다”고 밝힌 바 있다.
‘승천’
현재 이 작품의 소장자는 서울미술관 설립자인 안병광 유니온제약 회장이다. 안 회장은 지난 3월 독일 박물관측으로부터 대여 요청을 받았고 지난달 항공편으로 운송을 완료한 상태다. 작품은 11월5일까지 전시되며 보험 산정가가 100억원 대에 달한다. 보험료는 독일역사박물관이 전액 부담한다.
독일 역사박물관 측은 운보의 ‘예수의 생애’가 이번 전시의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이며 “전쟁 중 피란민의 몸이었던 운보가 재해석한 예수의 생애는 한국 기독교의 상징”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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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원 종교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