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근혜 구속과 불구속 형사재판의 원칙

2017-04-05 (수) 임종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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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제도에 대한 개선안이 제시되었을 때 흔히 나오는 저항은 개선안이 원칙적으로는 일리가 있지만 그 원칙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있다는 반론이다. 대한민국의 법조계에 불구속 형사재판이 원칙이라는 말이 나온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데 이번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을 보면 이 원칙은 아직 현실이 되지 않고, 이 원칙을 실천시키려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형사 재판에서 원고의 거증책임은 매우 무겁다. 피의자가 기소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어떠한 합리적 의심이 있을 수 없을 만큼 증거를 제시해야 유죄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은 인간이 하는 일이라 억울한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가 종종 생겨난다. 억울한 희생자가 나올 수 없는 형사소송제도를 아직 인간들은 만들지 못했다.

불구속 수사 재판 원칙, 묵비권, 무죄추정 원칙은 범죄자를 봐주려 생긴 원칙이 아니다. 몇몇 법률가가 머리를 짜서 만들어낸 원칙도 아니다. 어떻게 하면 억울한 사람의 희생을 막고 사회 안위를 위한 형사소송제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실제적 요구에 의하여 현대적 사법제도를 먼저 발전시킨 나라들에서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해온 합리성과 정당성이 입증된 원칙들이다. 민주적 사회와 사법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구실로도 함부로 내쳐버릴 수 없는 보편적 가치를 가진 사법원칙이다.


한국법에 의하면 검찰의 피의자의 혐의에 대한 소명이 있고,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위험이 있는 경우 구속 영장을 발부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불구속 수사와 재판을 원칙으로 실행하고 있는 나라에서 증거인멸 우려는 구속의 사유가 되지 않고 단지 도주의 위험만이 구속의 사유가 된다. 인멸한 만한 증거가 있다고 생각되면 당장 법원의 영장을 받아 증거를 확보해야지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걱정만 하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며,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증거를 인멸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구속이 허가된다면 구속 안 될 피의자가 없을 것이다.

구속하지 않는다고 피의자가 도주하여 재판에 나타나지 않을 우려는 그다지 크지 않다. 도주를 한다고 원래의 혐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도주를 하면 죄목이 추가될 뿐이다. 한번 체포되었던 피의자를 경찰이 못 찾는다는 것도 생각하기 어렵고, 대부분 피의자의 경우 도망자의 생활이라는 것은 구금생활보다 덜 고달프지 않다.

도주하면 미국과 같이 보석금제도가 있는 나라에서는 보석금까지 떼이게 된다. 구속을 하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조건이나 제한을 두고 석방 할 수 있다. 어떤 장소나 사람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던지, 필요하면 전자 팔찌로 항상 동향파악을 할 수 있게 하거나 거주지역을 제한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재판 전에 구속해야 할 피의자는 석방하면 사회에 위험이 될 수 있는 흉악범죄 용의자, 사형이나 무기 징역 범죄의 혐의를 받아 도주해봐야 더 처벌받을 여지가 별로 없는 중범죄 피의자뿐이다.

<임종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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