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월은 잔인한 달

2017-04-05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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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1차 대전은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엄청난 경제적 손실에다 수많은 사람들을 허탈감으로 몰아넣었다. 이 때의 상황을 미국계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은 자신의 장편 시 ‘황무지’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로 봄비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주었다.”

전쟁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무지, 그리고 잔혹함에서 파생되는 불행한 결과이다. 그 참혹함과 황폐함을 이겨내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와 끈기, 그리고 살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투쟁은 한마디로 잔인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엘리엇은 4월을 잔인하다고 표현하였다.


한국인들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로 기억된다. 군부독재 시절 최루탄으로 얼룩진 4월은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내기도, 잊을 수도 없는 잔인한 달이었다. 특히 지난 3년전 4월16일에 300여명이 바다에 수장된 세월호 침몰사건은 잔인함의 극치였다. 그날의 고통은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이날 전국민은 무능한 정치권에 의해 배에 타고 있던 고귀한 생명들이 그대로 바다에 수장되는 어이없는 광경을 망연자실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배안에서 죽음의 공포와 불안감에 떨고 있었을 고귀한 생명들과 이들 가족들의 아픔과 고통을 어떻게 말로 다 형언할 수 있을까. 그때의 아픔은 지금도 우리에게는 살을 도려내는 잔인함으로 남아 있다.

세월호는 이제 3년만에 갖은 우여곡절 끝에 물 위로 올라 왔지만 아직도 유가족들에게 4월은 간장이 찢어지는 잔인한 달이 되고 있다. 이제나 저제나 사랑하는 가족의 유해를 찾을 수 있을까 애간장을 태우고 있지만 배는 아직도 많은 물과 진흙이 차있어 수색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고 기껏 보이는 건 동물뼈 뿐, 한 순간 한 순간이 절망의 연속이다.

사건 발생당시 무심한 대처로 숱한 비난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의 주인공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으로 구치소에 수감돼 조사를 받고 있고 이래저래 한국의 4월은 잔인하고 참담하기 그지없다.

매서운 추위가 한동안 지속되더니 이제는 연일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새봄을 재촉한다. 꽃샘추위가 제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는 법. 매화꽃이 겨울의 강추위와 폭설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고난의 상징, 매화꽃은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기품이 있다.

희망이 실종되고 정의가 사라진 한국사회에도 매화꽃처럼 희망의 꽃이 피어날까. 죽음을 딛고 소생하는 부활의 기쁨과 언 땅에서 새싹이 움트는 봄의 생명력과 생동감이 과연 솟아날까.

희망의 꽃이 한국 사회, 정치 전반의 많은 문제점들로 인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과 고통으로 상실감에 젖어 있는 한국민 모두의 아픈 마음을 따스하게 보듬어주었으면 한다. 이제 한국에도 올바른 대통령이 선출돼 화창한 봄소식이 넘쳐나고 희망의 봄기운이 가득한 그런 날들만 왔으면 좋겠다.


반만년 한국 민족의 역사는 그 자체가 고난을 이겨낸 극복의 역사이다. 일제강점기, 6.25 동족상잔의 민족적 비극과 고통, 어지럽고 힘든 격동기의 연속이었다. 불행하고 참담한 역사였지만 한민족은 모든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한국의 4월은 더 이상 잔인한 달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는 봄, 희망의 4월이 되기를 소망한다. 활짝 피어나는 생명의 계절, 4월을 잔인하다 외면 말고 직면해서 헤쳐나가는 용기가 이제 필요하다. 사람들은 때로 현실이 너무 버겁고, 과거와 미래의 고통이 아프고 싫다며 모든 것을 묻고 싶어 한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 더 이상 4월이 잔인함이 아닌, 밝고 희망찬 계절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은 과거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데 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말처럼 우리의 의식이 새봄의 햇살처럼 활짝 깨어나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희망찬 미래의 새 역사를 써나가야 하지 않을까.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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