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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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진짜 신문

2017-03-28 (화) 노 려/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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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눈

눈 속에 파묻혀 있던 신문을 집어 들고는 ‘한국일보다!’ 감격을 했다.
지난 14일 새벽부터 쏟아져 듬뿍 쌓인 눈을 내다보며, 오늘 신문은 못 오는구나했다. 누군가 신문 배달 문의 전화가 왔지만, ‘죄송해요 저도 못 받았어요.’ 했다.

마감시간에 맞추어 원고를 써 보내 놓고는 다음 날, 즉 화요일 아침이면 제일 먼저 드라이브웨이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집어 들고, 전면은 대충 제목만 흘낏 보면서 뒤에 실린 웨체스트 판을 먼저 찾아본다. 혹 잘못된 것이 없는지 순간적인 조마조마함을 거쳐, ‘잘 나왔구나.’ 활자화 된 기사를 보고나서야 안심을 한다.

그러나 그 날은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이거야 자연재난에 속하는 일이니 할 수 없구나하며 단념을 했다. 나중에 14일자 진짜 신문을 찾아 철을 해놓을 셈을 하고, 눈 치우는 일에만 전념을 했다.


눈 더미가 좀 내려앉을 즈음, 옆 집 드라이브 웨이 쪽에 초록색 비닐봉지가 삐죽이 보였다. 봉지가 낯이 익었다. 평소에 그 집 앞에 이런 것이 놓인 것을 보지 못했었기에 혹 저것이 한국일보인가? 아니면 로컬광고 신문인가하면서도 남의 집이기에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그 초록색 신문 봉지는 그대로 놓여 있었다. 혹시? 재빨리 뛰어가 그 봉지를 집어 들었다.

아, 맞다. 진짜 한국일보다. 내가 포기했던, 화요일 14일자였다.
이 기분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동굴 속에 숨겨졌던 보석함 발견? 아니, 갑옷 입은 투사가 내게 보여준 충성심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해야 하나.

학교와 은행과 우체국과 웬만한 회사가 다 문을 닫았던 날이다. 며칠 전부터 예보가 되어 수퍼마켓 선반이 텅 비기 까지 했던 눈 폭풍이었다. 신문 배달이 안 되었다고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그런 날이었는데, 그래서 당연히 신문은 안 올 것이라고 예상했었고, ‘에이 하필이면 웨체스터 판이 나오는 화요일일건 또 뭐야. 뭐 할 수 없지 뭐.’ 했었던 것이다.

추리는 간단하다. 새벽에 배달된 신문은 센바람으로 옆집 드라이브웨이로 날라 갔고 그 위에 눈이 덮였던 것이다. 그렇게 받아 읽은 한국일보가 마치 멀리서 눈을 뚫고 나를 찾아온 친구처럼 반갑고 귀했다.

제1면 큰 제목은 ‘초대형 눈 폭풍 상륙…비상사태 선포’였다. 서서히 신문 페이지를 둘치며 웨체스터 판을 열어 본다. 내가 쓴 ‘폭설 주위보’란 소제목이 보인다. 그렇다. ‘내일 이 지역에 들이닥칠 강설량은 얼마나 될까.’ 마감 직전까지 챙겨보고서 기사를 써 보냈었다.

매일 당연한 듯 쉽게 읽어내던 우리 신문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페이지마다 하나하나 사람의 손길이 느껴진다. 엄청난 에너지다. 세상 돌아가는 일과 생활의 정보를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잠시도 쉬지 않고 뛰는 발길의 힘이다.

돋아나던 싹을 뭉그러뜨렸던 눈 폭풍을 마다 않는 저널리스트의 쟁이 기질과 따끈한 소식을 전해주려는 배달원의 사명감까지 찡하게 전해져 온다.

<노 려/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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