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섯 손가락

2017-03-27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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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뼈, 혈관, 근육, 힘줄이 다 들어 있다. 손끝은 눈보다 예민하다. 손의 근육은 기억도 한다. 손은 ‘마음의 눈’인 셈이다. 손의 움직임은 다양하다. 식사를 한다. 연필을 쥐고 글씨를 쓴다. 타이핑을 한다. 휴대전화 문자를 보낸다. 악기를 연주한다. 애정의 손짓을 한다. 분노의 주먹질도 한다. 기타 등등. 사람의 손동작은 정교하고 세련되며 역동적이다. 복잡한 동작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화의 선물이다. 손을 ‘밖에 나와 있는 뇌’라 부르는 이유다.

손과 뇌는 밀접한 관계다. 손 전체는 두뇌의 한 부분으로 간주한다. 손의 움직임은 뇌의 발달을 촉진시킨다. 교육적 경험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사람은 직립자세를 통해 손을 대지로부터 자유롭게 했다. 뇌의 용적도 비약적으로 키웠다. 인간이 동물로 떨어져 나오게 한 것은 자유로워진 손으로 행했던 노동이라고 한다. 철학자 칸트도 손을 ‘눈에 보이는 뇌의 일부’라고 했다.

손에는 손가락이 있다. 한손에 다섯 손가락이다. 엄지손가락, 집계손가락, 가운데손가락, 약손가락, 새끼손가락 등이 우리 이름이다.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라고도 한다.


어렸을 때는 엄지를 아빠 손가락이라 했다. 당시는 아버지가 최고였다. 권위와 무서움에선 더욱 으뜸이었다. 검지는 물건이나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했다. 중지는 한가운데 있어 가운데 손가락이라 했다. 약지는 옛날에 약을 잘 섞으려고 네 번째 손가락을 사용했다고 해서 약손가락이란다. 소지는 가장 작은 손가락이다. 그래서 작은 손가락이나 새끼 손가락이라 부른다.

다섯 손가락은 서로가 최고라고 뽐낸다. 옛날 구연동화에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어느 날 다섯 손가락이 모여 자기가 최고라고 언쟁을 하고 있었다. 엄지가 먼저 자신이 최고라고 말을 꺼냈다.

사람들이 최고를 표현할 때 네 손가락을 접고 엄지만 치켜세운다는 이유였다. 인장을 찍을 때도 엄지를 사용하니 그 역시 제일 중요한 손가락이라 했다. 이를 듣던 집계손가락이 나섰다. 무엇을 가리킬 때 반드시 내 손가락을 사용하니 최고란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욕하려고 삿대질 하는 것도 자기 역할이니 제일 중요하다고.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콧구멍 청소도 자기가 한다고 내세운다. 가운데손가락도 끼어들었다. 키가 제일 크니 최고란다. 꿀밤을 때릴 때도 자기 손가락을 사용하니 그 역시 최고란 이유다. 약손가락도 가만있지 않는다. 최고의 이유로 결혼반지 끼는 손가락임을 내세운다. 사람들이 제일 아름다운 손가락에 반지는 끼어주니 최고란 것이다.

질세라 새끼손가락도 한 말 던진다. 사람들이 약속할 때나 사랑하는 사람을 표현할 때 자기 손가락을 사용하니까 최고란 말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손바닥이 나섰다. 너희 모두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손가락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몸에 모두가 붙어 있다며 서로 화해하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할 말이 없었던 다섯 손가락들은 서로 미안해하며 다시는 싸우지 않고 제 역할만 충실히 하며 지냈다고 한다.’

입으로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기만 다섯 손가락의 겸손한 반성으로 손가락의 관절은 앞으로만 숙여지는 게 아닐까 싶다. 다섯 손가락의 관절은 모두 손바닥을 향해 앞으로 굽혀지지 절대 뒤로 젖혀지지는 않는다. 손바닥이 없으면 손가락이 있을 수 없는 것도 분명한 사실인 셈이다.

다섯 손가락은 모두 중요하다.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어, 그 중 하나라도 없으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는 한인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인들 역시 엄지손가락, 집계손가락, 가운데손가락, 약손가락, 새끼손가락처럼 각자의 역할이 있기 마련이다. 그 중 한사람이라도 삐끗하기 시작하면 한인사회의 삶은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며칠 전 손가락을 다쳤다. 왼손 집계손가락이다.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얼음찜질도 매일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낫지 않는다. 손가락은 뼈가 작고 신경과 인대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치료가 쉽지 않다고 한다.

손가락 하나 다쳤는데 이토록 삶이 불편할 줄은 몰랐다. 하찮게 여기던 손가락 하나의 소중함도 새삼 느꼈다. 손가락은 누구나 쉽게 다칠 수 있는 신체부위라고 한다. 모두가 ‘조심하길’ 바라는 마음에 넋두리가 너무 길었나 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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