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으로 가는 길

2017-03-24 (금) 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장
크게 작게

▶ 커네티컷 칼럼

겨울답지 않게 따뜻하던 날씨가 계속 이어져 이대로 봄이 온 거라고 믿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사는 작은 도시에도 곧 눈 폭풍이 몰려 올 거라는 예보가 들렸다. 서둘러 문을 닫은 상가들은 빠르게 어둠속으로 숨어 버렸고, 인적이 뜸해진 도시는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을씨년스러웠다.

미처 식료품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마켓으로 허둥대며 들어가고, 지팡이를 앞세우고 마켓에서 빠져 나온 노인이 바람에 떠밀려 휘청거린다. 넓은 주차장에는 낡은 차 몇 대가 한쪽 구석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이미 하얗게 화석이 되어 버렸다. 멀리 제설차 지나가는 소리에 바람소리가 뒤엉켜 어둠을 흔들 뿐이었다.

밤사이 지나간 눈 폭풍에 우리 집은 이미 작은 섬으로 변해 있었다. 언덕을 따라 하얀 눈 위에 첫발을 디뎌가며 열심히 길을 만들었다. 중국의 작가 '루쉰' 은 처음부터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길이 된다고 했었다. 우리의 삶도 한꺼번에 열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걸아 가는 그 발자국이 쌓여 비로소 길이 되는 것이리라. 언덕을 다시 오르며 잠시 가뿐숨을 고르고 나만의 낙관과 긍정을 찾아내며 겨울을 겨울답게 껴안는다.


내친김에 현관 쪽으로 들어가는 길도 만들고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아내와 문 앞에 눈사람도 만들어 세웠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손에 와 닿는 눈은 어린아이 손처럼 부드러웠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는 아직 열리지 않았으나 조바심치지 않기로 마음먹으니 덤으로 얻은 휴일이 한결 여유로웠다. 그래도 다음날 출근 준비는 해 두어야 했다. 만약을 준비하며 도로와 집 경계에 차를 세워 둔 탓에 한 시간 남짓 눈을 치우니 차가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생겼다.

비록 밤새도록 서걱거리는 나무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지나갔지만 새벽을 여는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차 문을 열며 본 작은 눈두덩이를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3월의 눈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탓이었다. 이른 새벽이라 자세한 상황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후진하며 들은 둔탁한 소리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밝은 햇빛 아래서 본 차는 오른쪽 깜박이 아래가 찢겨 나가 있었다. 그렇게 3월의 눈은 차가운 얼음덩어리로 변해 깊은 상흔을 남겼다. 아직은 위풍당당한 겨울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리 대단하지도, 그렇다고 남루 하지도 않다. 때로는 익숙한 풍경으로 오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로 오기도 한다. 가끔 나는 내 삶을 여기까지 이끌었던 사건들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돌이켜보니 나를 변화시킨 계기는 꼭지점처럼 선명하게 존재하지만, 방향을 결정했던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던 시선과 태도에 있었던 것 같다. 기존의 질서나 흐름에 소위 '사회정의'라 포장하여 무조건 비판의 잣대를 들이 대는 비뚤어진 기사나 글도 불편하고,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진보'적인 의견에 무조건 날을 세우며 적대시하는 모순도 싫다. 왜곡된 눈을 거두어 진실을 대면하게 하는 겸손한 글들이 필요한 시대이다.

저녁 내내 숨을 죽이고 뉴스를 봤다. 마침내 세월호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동안 인양을 위한 준비 작업에 시간이 지체 되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몇 시간 만에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자니 오히려 그동안 침체된 시간들이 믿기지 않는다. 그 수많은 낮과 밤을 슬픔으로 건너 온 유가족과 아홉 분의 미수습자 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와 평화를 빈다.

새벽녘, 맨 먼저 도착한 빛이 삭막하던 겨울 숲을 깨운다. 겨울의 꼬리를 붙잡고 안녕이라고 말 할 시간도 주지 않은 지난해 그 시간들처럼 계절은 늘 이런 식으로 오고 또 간다. 해야 할 일은 점점 더 많아지고, 시간은 내게 단 한 번도 느린 걸음으로 너그럽지 않았다. 허둥대지 말고 매번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풍경안의 짧은 생명을 사랑해야겠다. 봄이니까.

<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