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면초가에 놓인 한국

2017-03-22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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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초(楚)나라 때 항우가 한(漢)나라 유방에게 패하여 한나라 군사들에게 포위당해 있었다. 그때 밤마다 초나라의 노랫소리가 들리자 초나라 군사들은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도주했고, 항우는 초나라의 군사들이 한나라에 항복했다고 생각했다. 이는 유방이 한나라 군사들에게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게 하여 초나라 군사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꾸민 일이었다. 여기서 유래된 ‘사면초가(四面楚歌)’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주 곤란한 지경에 빠진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사면초가 상황이 바로 지금의 한국의 현실이 아닐까.

한국은 지금 주변국들에 시달리며 엄청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방어를 위해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사드배치를 하려 하자 중국이 한국기업과 관광상품에 대해 보복 조치를 단행,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직격탄을 맞은 롯데그룹의 손실액은 한 달 매출액이 1,000억 원에 이를 정도이고 여기다 반 한류문화, 반한 감정이 일면서 한국인들의 신변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과 중국은 동북아 패권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인근 국가 일본은 유사시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전환, 모두가 자국의 이익추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끼어 한국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번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에서 한국은 미국이 한국의 사드문제로 반한 운동을 벌이는 중국에 대해 한마디라도 일침을 가해주길 바랐었다. 하지만 이는 장밋빛 환상이었나. 미국은 오히려 당사국인 한국을 제외한 체 북한의 비핵화. 평화협정에 관한 빅딜카드만 매만졌다고 한다, 그리고는 양국간의 협력만을 서로 외쳤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약소국이기에 겪는 수모라고 생각하니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이미 6.25 동란때 구 소련과 미국, 두 강대국 사이에서 북한은 소련이, 남한은 미국이 관할 통치하는 것으로 휴전된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하나가 되지 못하는 비운을 겪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한국은 그동안 약소국으로서 주변국에 당한 고통이 얼마였던가. 중국으로부터 숱한 침탈을 당하면서 그로 인해 백성이 노예로, 왕족은 볼모로 잡혀가고 공물을 바치고 임금이 무릎을 꿇고 그것도 모자라 일본으로부터는 왕비가 살해당하고 나라가 36년간 식민지배를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그 아픔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행중이다. 한반도를 두고 미국과 중국이 각자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 두 나라중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오랜 혈맹관계이고 중국은 북한과 밀착관계에 있는데다 한국과 적지 않은 경제적 고리가 묶여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 개발을 위한 시험발사를 하면서 계속 남한과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를 보는 미국은 선제공격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강경론으로 나오고 있어 자칫 문제가 커질 경우 남한의 안위가 걱정이다. 이처럼 상황이 위급한데 한국은 어디로 가야할 지 강대국의 눈치만 살피며 좌충우돌 하고 있다. 이런 때 전직 대통령은 피의자로 검찰에 소환되고 국민들은 연일 촛불, 태극기파로 나뉘어 시위에만 몰두,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악법도 법이라고 했던가. 이번 탄핵선고 결과는 민주국가 최고기관의 재판관들이 정한 결정이다. 아무리 내 의견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민주주의 법질서에 따라 내 의견을 접어야 하지 않을까. 끝까지 내 생각만 옳다고 하는 것은 패권의식의 발상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 나라가 안팎으로 혼란한 지금, 무엇이 진정한 애국의 길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답할 때다.

“3,000년의 역사에서 배울 것을 모르는 자는 아무 것도 없이 암흑 속에 있어라. 그 날 그 날 산다 해도...” 역사의 교훈을 결코 잊지 말고 되새겨야 한다는 의미로 말한 괴테의 엄중한 경고이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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