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 초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로 오바마가 자신을 도청했다는 뜬금없는 주장을 날렸다. 다른 도널드의 주장처럼 아무런 증거도 제시된 바가 없다. 그 후 지금까지 오바마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연방 하원 등은 한결 같이 이 사실을 부인했다.
이쯤 되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깨끗이 물러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도널드는 아직도 자기가 옳다고 우기고 있다. 이런 엉터리 주장을 내뱉고 끝까지 잘 했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지금 시급히 처리해야 할 오바마케어 개혁과 감세안, 예산안 통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 제 발 등을 도끼로 찍고 있는 셈이다.
자기 발등을 도끼로 찍은 것은 도널드 뿐만 아니다. 연방 하원이 마련한 의료 개혁안이 시행될 경우 향후 10년간 2,400만 명의 미국인이 보험을 잃게 될 것이라는 의회 예산국 보고서가 나왔다.
공화당 의료 개혁의 주안점은 오바마케어의 강제 가입 조항을 폐지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메디케이드 확충을 없애며 나이 많은 저소득층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는 것이다. 이런 제도를 실시하면서 보험 가입자가 줄지 않으리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런 결과가 모든 미국인이 보다 싼 값으로 보다 좋은 건강 보험에 들게 해주겠다던 트럼프 공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새 제도의 장점은 예산 절감으로 향후 10년간 3,370억 달러의 재정 적자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또 다른 트럼프 공약인 감세안 통과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유세 기간 중 중산층에 대한 대대적 감세를 약속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내놓은 감세안에 따르면 중산층에 돌아가는 감세 혜택은 1인당 1,500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나 상위 20%는 1만6,600달러, 상위 1%는 21만4,000달러의 혜택을 보게 된다.
향후 10년간 발생할 6.2조 달러의 감세액 중 상위 1%가 가져갈 액수는 3조 달러로 그 절반에 달하지만 상위 20%와 80% 사이의 중산층이 입는 혜택은 20%에 불과하다. 중하류층을 위한 감세가 아니라 극소수를 위한 감세임을 이보다 분명히 보여줄 수는 없다.
뿐만이 아니다. 트럼프의 새 예산은 국방부와 국토 안전부를 제외한 거의 전 분야에 걸쳐 대대적인 삭감을 예고하고 있다. 이 안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저소득층을 위한 방과후 프로그램, 렌트 보조, 에너지 보조, 커뮤니티 개발 기금, 고령자를 위한 급식 프로그램(Meals on Wheels), 저소득층을 위한 법률 보조 등의 프로그램이 아예 폐지되거나 대폭 줄게 된다. 이 프로그램 수혜자들은 백만장자가 아니라 지난 번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던 중하류층 백인들이다. 그러고 보면 오바마케어 폐지로 보험을 잃게 될 사람들도 주로 역시 중하류층 백인들이다.
새 건강 보험법과 새 감세안과 새 예산이 통과돼 실행되면 백만장자들은 콧노래를 부르고 건강 보험을 잃고 온갖 정부 혜택까지 박탈당하면서 사실상 감세 혜택은 별로 누리지도 못하는 백인 중하류층 사이에서 “내가 이러려고 트럼프를 찍었나”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를 멕시칸과 이민자, 회교도 탓으로 돌리고 장벽을 쌓고 회교도만 못 들어오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믿었던 트럼프 지지자들의 면면을 살펴 보면 그런 꼴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들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다. 되놈이 돈을 가져갈 수 있게 열심히 춤을 춘 정도가 아니라 웅담까지 빼준 곰 꼴이 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트럼프도 좋아하고 있을 때만은 아니다. 제임스 코미 FBI국장은 20일 2016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 트럼프 캠페인과 러시아와의 담합 및 유착 혐의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공식 인정했다.
만약 트럼프 측이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면 러시아의 이익을 위해 일하겠다고 거래를 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이는 탄핵이 아니라 형사 소추까지 갈 수 있는 사안이다.
닉슨은 1972년 한 개 주를 제외한 압승을 거뒀음에도 불과 2년이 안 돼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사임했다. 2016년 힐러리에게 유효 표에서 300만 표를 진 도널드는 닉슨보다 훨씬 못난 인물이다. 그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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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