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그네 사랑!

2017-03-20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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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교회의 역사는 곧 한인사회의 역사다. 한인사회가 커져가면서 한인교회도 함께 성장했다. 이민 초기 한인들은 교회를 찾는다. 교회의 크기는 상관없다. 말이 통하는 한인들을 만날 수 있어서다. 그 곳에서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고 도움을 받는다. 한인들의 낯선 타국에서 정착하기 위한 매개가 주로 교회였던 셈이다.

한인교회는 영어에 서툰 한인들이 정착하는데 도움을 주는 곳이다. 이민정착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도 힘이 되어 준다. 미 주류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도우미 역할도 해준다. 자녀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도 제공해 준다. 한인 가족들이 일요일에 많은 시간을 교회에서 보내는 이유다.

한인교회는 한인사회 성장에 많은 기여를 했다. 정치력 신장을 위한 유권자등록운동에 참여한다. 불우한 이웃돕기 활동에도 앞장선다. 한인사회의 성장이 한인교회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한인교회는 이민생활의 중심 역할을 해 왔지만 분열도 많았다. 경쟁과 충돌로 상처도 남겼다. 발전하고 성숙하는 과정일 수 있다. 하지만 점점 교회를 외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신도가 감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인교회가 자주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이유다. 분명한 것은 그래도 아직은 많은 한인들이 한인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 내 기독교계가 서류미비자 보호를 위해 이민자보호 성역운동(The Sanctuary Movement)을 펼친바 있다. Sanctuary는 기독교에서 ‘성전’이란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보호구역’, ‘성역’, ‘사면’ 등의 뜻도 담겨 있다.

당시 기독교계가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등 남미등지에서 독재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불법 입국하는 사람들의 사면을 요구하는 요청을 펼쳤다. 동참하는 교회들은 교회나 신자의 집에 서류미비자들을 숨겨주고 추방을 방해하는 데 주력했다.

신도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민자가 서류미비자란 이유로 가족들과 생이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이민개혁문제에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로인해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하던 1986년 이민개혁법이 통과됐고, 300만 명이 합법적 신분을 취득할 수 있었다. 현재도 많은 교회들이 지속적으로 ‘불법이민자 보호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 뉴욕일원 한인교계가 트럼프 대통령의 반 이민 행정명령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서류미비자들을 보호하는데 발 벗고 나섰다. 한인교회들이 ‘이민자보호교회’가 될 것을 선언하고 더 많은 교회의 동참을 이끌어 내기로 했다. 체포와 추방의 공포로 떨고 있는 서류미비자들에게 교회가 피난처가 되어 주기로 한 셈이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이들의 목표는 서류미비자들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피난처임을 알리는 것이다. 임시거주 보호소가 되어 법률지원도 하고 친 이민 기관과의 연대를 통해 서류미비자들과 늘 함께 하는 것이다. 참으로 환영할만한 일이다.

성경에는 ‘나그네’가 숱하게 등장한다. 유랑하는 나그네다. 그들은 남의 땅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성서 속의 나그네는 바로 낯선 미국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인들은 누구나 나그네인 셈이다. 합법적인 나그네도 불법적인 나그네도 있다. 지금은 합법적 나그네라도 오랜 고생을 딛고 합법적인 나그네가 된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나그네의 설움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한인교회는 종파와 상관없이 성경말씀처럼 나그네들에게 관심을 갖고 친절과 봉사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나그네들의 인간 권리가 침해되지 않고 보장되도록 돕는 일에 노력해야 한다. 추방으로 가족과 생이별을 하지 않도록 나그네를 보호하는 일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한인교회들이 ‘이민자 보호교회’가 될 것을 선언하고, 불법 나그네 보호에 적극 동참해야 하는 이유다.

요즘 트럼프의 반 이민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한인사회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한인교회는 모두가 빠짐없이 불법 나그네 보호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그네 사랑’을 실천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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