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아도로로사

2017-03-20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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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도로로사(via dorolosa)는 라틴어로 ‘슬픔의 길’ 혹은 ‘고통의 길’이란 뜻이며 예수가 재판을 받은 빌라도의 법정으로부터 십자가에 달리는 골고다까지의 약 800미터의 길을 가리킨다. 지금도 많은 순례자들이 비아도로로사를 찾아 십자가의 길을 밟아 그리스도의 고난을 되새긴다. 비아도로로사에서 예수는 일곱 가지 사건에 직면하였다.

첫째,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 둘째,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게 하고 채찍질을 당한다. 셋째, 무거운 십자가를 이기지 못하여 지친 예수가 땅에 쓰러진다. 넷째, 슬퍼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다. 다섯째, 두 번째로 땅에 쓰러진다. 여섯째, 옷이 벗겨져 알 몸이 된다. 일곱째, 십자가에 못 박혀진다.

비아도로로사를 많은 사람들이 밟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체험해 보려는 심정일 것이다. 베드로는 크리스천의 기쁨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라고 하였다.(베드로 전서 4:13) 십자가를 지는 것은 아픔이요 고통인데 그 고통 속에서 신앙의 환희를 체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많은 순교자들이 기쁨으로 당당하게 죽음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죽음 속에서 패배가 아니라 승리를 체험하기 때문이다.


중세기의 수도사들은 인사말로 ‘모멘토메리’라고 하였다. “죽음을 기억하자”는 뜻이다. 왜냐하면 죽음이야 말로 새로운 생명으로 들어가는 영광의 입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부활 신앙을 기본으로 믿으며 산다. 부활이란 죽음을 극복함을 뜻하는 것이다. 일본의 다마끼 아이코 여인은 흔히 ‘나병환자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나병환자의 요양원을 만들고 그들을 돌보다가 어느 날 자기도 나병에 감염된 것을 발견한다. 그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 영의 눈이 열렸다. 눈썹이 빠져 눈썹의 고마움을 알았다. 하나님께서 눈을 지키시려고 눈썹을 주신 것처럼 나에게 나병을 주어 감사를 알고 영생을 보게 하셨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감사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함은 첫째 ‘영광의 영’에 참예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베드로 전서 4:14)

둘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함은 하나님의 후사(後嗣)가 되는 것이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로마서 8:17)

셋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다 함은 넘치는 위로를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침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린도 후서 1:5) 환난 속에서 소망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위로이다. 소망이 인내로, 인내가 소망의 극복과 승리로 이어진다.

구세군의 창설자이고 많은 전도와 사회사업에 평생을 보낸 윌리엄 부스 대장은 임종이 가까운 1912년, 병실에 모인 사람들에게 마지막이 된 설교를 하였다. “저기 가난한 여인들이 배가 고파서 울고 있습니다. 내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기 아이들의 신음 소리가 들립니다. 잠자리가 없는 아이들입니다. 내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기 감옥 문이 보입니다. 또 젊은이 하나가 그리로 들어갑니다. 내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나의 전쟁터는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있습니다.” 부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다는 말은 예수 때문에, 예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니까 받게 되는 모든 고통, 손실,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당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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