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포기의 풀꽃이 선도자가 되기까지

2017-03-18 (토) 한혜진/뉴욕가정상담소 ‘하모니’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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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도망쳐 나왔어요. 너무 많이 때…” 끝내 울음을 터뜨린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절박한 심정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올해로 8년째 뉴욕가정상담소의 핫라인 봉사를 하고 있는 필자이지만 전화가 울릴 때 마다 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전화기 너머 때론 절박함과 때론 명치끝이 답답함을 느끼며 ‘산다는 거… 참 쉽지 않네...’라고 수없이 되뇌이기도 한다.

무미건조한 미국 생활을 하던 중 전환점을 찾고자 한 필자는 누군가에게 미력하지만 위로가 되고 싶은 마음에 봉사를 할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만난 곳이 뉴욕가정상담소였다.

그런 인연으로 8년을 몸담으며 동고동락 하다 보니 작년에 4,000시간 이상 봉사자에게 수여되는 Lifetime Achievement Award 상을 받았다. ‘4,000시간이라니… 지난 8년간 많은 일들을 많은 분들과 참으로 행복하고 즐겁게 했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 안의 일원으로 있다는 사실 또한 무척 행복한 일이었다.


뉴욕가정상담소는 가정폭력, 성폭력, 학대받는 사람들을 위한 한인사회 대표적인 단체이다. 상담소는 24시간 한국어 & 영어 핫라인을 운영하고 있고 모든 연령대의 다양한 문제들을 전문 상담가와 상담받을 수 있으며 직업교육과 부모교육 및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무료로 진행되며 절대비밀 보장 원칙이다. 이처럼 상담소는 마치 커뮤니티의 친정집이자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상담소의 역할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사무실에서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소리와 직원들이 두드리는 컴퓨터 자판 소리를 들으면서 상담소가 없었다면 이 많은 사람들을 돕고 지원하는 일들을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도 뉴욕가정상담소가 무슨 역할을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혹자는 “가정상담소? 무슨 흥신소같은 곳인가요?” 라고 묻는 사람도 있고 또 혹자는 “들어는 봤는데 나하곤 상관없어요.” 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전혀 연관없는 분들에게 상담소를 알리는 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중 상담소에 ‘선도자’ 라는 아웃리치 팀이 발족이 되어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한 마음으로 팀원이 되었다. 고통에 숨죽이며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밝고 가치있는 세상으로 이끌어 주는 그 일이 바로 선도자가 하는 일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또 한 가지 간과 할 수 없는 중요한 점은 선도자 아웃리치 팀 활동이 내담자의 직접적인 서비스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 일이 필자에게는 어떤 일보다 가치있고 보람있는 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득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 떠오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아마도 모든 봉사자들이 이런 풀꽃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모두 지금도 어느 누군가가 용기내어 도움을 요청하는 그 순간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당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라고.

<한혜진/뉴욕가정상담소 ‘하모니’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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