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흐르는 세월 속에서

2017-03-17 (금) 김갑헌/맨체스터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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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빠르다. 벌써 삼월이요 중순이다. 꽃망울이 붉게 오르는 듯하더니 갑자기 밀어닥친 추위와 눈보라에 얼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걱정이다. 작년에도 이와 비슷한 때에 추위와 눈보라가 몰아쳐 꽃망울들이 모두 얼었었다. 봄마다 앞들에 피던 홍매화 꽃은 피기도 전에 모두 떨어져 버렸고 매실도 하나 보지 못했는데, 올해도 그럴 것 같아 벌써 서운한 마음이 든다.

한 계절, 한 세월이 지나며 빠르게 달라지는 주변 속에서 또한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한 동안 열정을 갖고 있던 것들이 어느새 뒤 안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취미에 관심이 가는 것이 신기롭다. 살펴보면 겉모습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생각하는 자신의 내면도 많이 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음악과 예술, 그리고 역사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건강과 이에 관련된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나는 TV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뉴스와 정부의 정책들 다루는 토론을 제외한 다른 프로그램은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뉴스와 즐겨보던 토론들 보다는 골프 채널을 자주 드려다 보는 버릇이 생겼다. 눈이 쌓여 골프를 칠 수 없는 것도 한 이유 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것이 뉴스나 토론들을 보지 않는 이유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자세히 자신을 살펴보면 뉴스와 정치적 토론들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 그 이유였다는 깨닫게 된다.


보도되는 뉴스를 읽고 들으면서 과연 이것이 사실인지 의문을 갖게 되고,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적 토론은 서로의 이해와 공통점을 찾기 위한 토론이라기보다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허한 자기주장의 논쟁으로 전락했다는 실망감이 바로 그 것이었다. 탄핵을 전후한 한국 정치판의 모습은 정치가 어떻게 타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추태의 극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합리적인 토론을 통한 건전한 타협은 불가능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당이 하고 있는 일들은 건전한 정당이라면 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것들이 더 많아 보인다. 정책을 통한 대결이 아니라 무조건 모든 것을 반대하는 모습이, 오바마 행정부가 집권하던 시절 공화당이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나서던 한심한 모습들을 똑같이 되풀이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뉴욕타임스와 이런 저런 뉴스를 읽은 후, 내가 마지막으로 읽는 신문이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Christian Science Monitor)라는 작은 신문이다.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이 읽는 신문으로 알려진 비교적 공정한 신문으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 이 신문의 시사만화에 민주당의 상징인 당나귀가 공화당의 상징인 코끼리에게서 “반대를 위한 정당 (Party of No)”이라는 사인을 빌려가면서 하는 말이,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이니, 내가 좀 빌려가도 괜찮겠지?”였다. 협상과 타협을 위한 반대는 건전한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나 당리당략을 위한 반대나 상대방의 정책보다는 그 인물들을 혐오하는 현상은 민주사회의 화합을 파괴 하는 독소일 수 있다.

골프 채널에서는 박인비 선수가 우승한 트로피를 높이 들고 있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해 작고한 아놀드 파머의 전기와 그의 인물됨 그리고 우승한 타이거우즈를 축하하는 노장 파머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가 웨이크 포레스트 출신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어제 내린 눈이 모두 얼음으로 변해버렸다. 눈 속에 갇혀서 바라보는 저 펼쳐진 푸른 초원과 그 위를 걷는 골퍼들이 부럽기만 하다.

<김갑헌/맨체스터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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