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희망은 절망에서 피어난다

2017-03-15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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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역사에 4대미인 가운데 왕소군이라는 궁녀가 있다. 왕소군은 한나라 황제 원제가 걸핏하면 쳐내려오는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화친으로 보내기로 한 공주 대신 몰래 보내어진 인물이다.

당시 화가 모연수는 황제의 명대로 수많은 궁녀의 얼굴을 그려 바쳤는데 왕소군은 자기미모에 자신감을 갖고 모연수에게 그림을 부탁하지 않았다. 그에 화가 난 모연수가 왕소군의 얼굴을 가장 못나게 그려 원제에게 바치는 바람에 원제는 왕소군을 그만 흉노족에 바치게 되고 말았다. 떠나는 날 원제가 왕소군의 실물을 보고 뒤늦게 땅을 쳤지만 이미 소용이 없었다. 이런 원소군의 가련한 마음이 훗날 동방규의 소군원(昭君怨)에 담겨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은 왔어도 봄 같지 않구나. 이 유명한 싯귀는 마치 지금의 우리 실상을 대변해 주는 말 같기도 하다.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은 왔건만 우리들의 마음은 여전히 시리다. 조국의 밝지 않은 현재의 혼란스런 모습에서 연유되는 것이 아닐까.


100만 명 이상이 주말마다 거리로 촛불을 들고, 태극기를 들고 뛰쳐나와 함성을 지르던 탄핵정국이 90일만에 헌재의 심판결정으로 종식되는 가 싶었다. 하지만 철저하게 대립된 촛불과 태극기파의 분위기는 여전히 봉합되지 못한 채 혼돈속에 미지의 대선정국으로 접어들었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봄은 왔건만 아직 봄이 왔다는 걸 정녕 느끼지 못한다. 추위만큼 가슴 시리게 하는 뉴스들이 연일 나라를 뒤덮고 있다. 나라가 마치 거센 폭풍이 휘몰아치는 파도 위에서 표류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번 탄핵선고에서 헌재 이정미 재판장은 “오늘의 대통령 탄핵인용이 대한민국을 화합과 상생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갈등속에 갈기갈기 찢겨져 있다. 마치 동족끼리 대적하던 조선의 말기, 해방정국, 6.25전쟁 직후 상황과 거의 대동소이하다.

언제나 이런 아픔이 봉합되고 상처가 치유될까. 역대 대통령들은 줄줄이 하야, 시해, 수감, 자살, 탄핵으로 이어졌다. 이번 대선에서는 또 어떤 대통령이 선출될까. 이제부터는 국민들에게 제발 희망을 안겨주고 정의와 법치를 제대로 세우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한다.

지금은 탄핵선고 결과 어느 한쪽이 승리했다고 해서 꽹과리를 울리고 잔치를 할 일이 아니다. 또 패배했다 해서 울고불고 때리고 부수고 난리를 칠 일도 아니다. 어느 누구도 승리자가 아닌 패배자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현실은 전 국민의 불행이자 대한민국의 비극으로 모든 국민과 정치인, 대통령이 거둔 자업자득이다.

그동안 한국 국민들은 주변국들의 숱한 침략과 탄압, 심지어 북한의 침략으로 발생한 참혹한 전쟁의 폐허속에서도 거뜬히 살아남아 경제적으로 빠른 성장을 거두고 빈곤에서 거뜬히 벗어나 세계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까지 올랐다. IT, 선박, 자동차, 한류, 한국 드리마 등은 세계를 휩쓸 정도이다.

하지만 오늘의 사태는 자만속에서 오로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의와 철저한 이기주의, 심각한 모럴 해저드가 빚은 결과이다. 아무리 보아도 대한민국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투성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희망은 언제나 절망과 뼈저린 고난속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꽃이 비바람을 견디며 피어나듯 빛은 어둠의 고통속에서 환히 보이는 법이다. 지금은 온 나라에 먹구름이 뒤덮여 있지만 영원히 머무르지 않고 잠시 쉬어갈 뿐이다. 한 많은 대한민국의 역사도 숱한 절망과 고난 속에서 오늘에 이르렀다.

러시아 문학의 거장 푸시킨은 이렇게 노래했다. “이제 곧 기쁨이 오리니 마음은 내일에 사는 것, 오늘이 비참하다 하여도 모든 것은 다 지나가 버린다. 검은 먹구름 뒤에는 항상 찬란한 빛을 발하는 희망이 기다리고 있게 마련이다.” 대한민국에도 머지않아 먹구름이 걷히고 밝은 희망이 빛을 발할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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